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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세월호 참사 2주기와 대통령 심기 경호

 ‘세월호’는 박근혜 정부의 기피단어 1호다. 대통령 앞에서는 ‘세’자도 꺼내지 않는 분위기다. 세월호를 떠올리는 말까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게 정부 여당의 인사들이다. 권력기관이나 새누리당 간부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관련된 일을 저지하면 엄청난 과업을 이룬 것처럼 청와대를 바라본다. 애국세력을 자처하는 관변단체들은 세월호 얘기만 나오면 벌떼처럼 나선다. 


 이런 형편이니 닷새 앞으로 다가온 세월호 참사 2주기는 유가족이나 단원고, 일부 뜻있는 시민들과 단체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채비할 뿐이다. 임박한 4·13 총선에서 야당조차 형식적인 이슈로만 삼는 것 같다.
 정부는 오는 16일 ‘제2회 국민안전의 날’ 행사를 ‘세월호 지우기’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이 행사는 국민안전처 장관과 해경·소방·행정 직원을 비롯한 관료 400명만 참석한다. 그것도 ‘안전다짐대회’ 형식으로 치러진다. 지난해 첫 번째로 열린 행사 때 서울 코엑스에서 1000여 명이 참석하고, 각종 안전장비까지 전시해 그나마 관심을 높인 것과 비교된다.

                                                                               

                                                                                                                                

  기실 첫 번째 행사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례와 국민은 보이지 않았다.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에 따라 세월호와 같은 끔찍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각오를 새롭게 하는 날로 삼겠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하다. ‘국민안전의 날’은 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여 만인 2014년 5월19일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4월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자청하면서 생겨났다.

                                                                                                  
 불과 1년 만에 대폭 축소돼 서울정부청사 별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리는 올해 행사는 대통령 심기 경호의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의 위협 같은 안보상황 등을 고려해 지난해보다 행사를 축소했다는 국민안전처 관계자의 해명이 참으로 군색하게 들린다. 대통령의 공약으로 어쩔 수 없이 만들긴 했으나, 대통령의 심기만 관리하는 것같이 느껴진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작업을 방해하는 일에는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 작업에서 엄청난 무리수를 둔 것도 결국 세월호 진상규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중대사안 때문이었다.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야당과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해 통과시켰다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불러오고, ‘배신의 정치’가 회자된 것도 세월호 때문이었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의 진짜 이유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고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알아서 기는 새누리당과 정부 기관은 세월호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방패막이로 나기에 주저함이 없다. 19대 국회는 2015년 말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상 규명 조사, 안전사회 건설을 목표로 활동한다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정부가 조사의 독립성을 보장한 특별법의 취지에서 벗어나, 조사 인원을 축소하고 공무원 개입 권한을 늘리는 시행령을 공포해 논란을 불러왔다. 그 뒤 특조위의 진상규명 작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정부의 입김과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의 노골적인 딴죽걸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 열린 진상규명 2차 청문회에서는 유가족들의 속을 뒤집어 놓은 발언이 속출하기에 이르렀다. 2차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명백히 구하지 않은 참사라는 것을 알았을 게다. 진상규명을 위한 3차 청문회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에는 경찰이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에게 최루액을 뿌려대며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진실’을 신(神)처럼 받들어야 하는 언론조차 대통령 호위무사 같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일부 언론은 진상 규명이라는 본질은 외면한 채 유가족들의 작은 실수만 부각시켜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온 세계 기자들이 진실의 군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라고 생각한다’는 카메룬 저널리스트 이드리스 엔주타블의 명언이 역설적으로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박근혜 정부가 끝날 때까지 세월호의 진실과 ‘대통령의 7시간’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을 게 틀림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