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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44)--<과학적 관리법> 프레드릭 테일러

 20세기를 눈앞에 둔 1899년 광활한 북미 대륙 전역에서 철도가 건설되고 있을 때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베들레헴제철소에 40대 중반의 남성이 이 회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전 세계에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실험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에게 하루 작업량을 할당한 뒤 이를 초과한 사람에게는 성과급을 주지만,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거나 이를 거부한 사람은 해고하는 일이었다.


 그는 노동자들이 42킬로그램짜리 철봉을 화차에 실어 나르는 광경을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75톤의 선철을 짊어져 날랐다. 이는 이전 작업 수치의 여섯 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이틀간의 관찰 끝에 그는 공정 작업량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1명당 하루 45톤을 나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결론지었다. 이전 작업량의 세 배였다. 


 이 실험자는 적개심으로 가득 찬 노동자들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경호원들의 호위까지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생산 공정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업무를 체계화하려는 집념어린 노력, 제조 공정에 관한 신개념 연구는 그칠 줄 몰랐다. 그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산 기법을 창안해 냈다. 그의 실험 결과는 ‘과학적 관리법’(원제 The Principle of Scientific Management)이란 책으로 탄생했다. 현대 경영학의 기틀을 만든 ‘테일러 시스템’은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의 이 같은 일념 덕분에 태어났다. 이 생산 기법으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가능해져 인류의 삶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다.

                                                                                             

 
 1911년 출간된 ‘과학적 관리법’은 작업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해 생산성 극대화 원리를 정립한 최고의 경영학 고전이다. 이 같은 업적 때문에 테일러는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과학적 관리법은 노동자의 표준작업량을 과학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시간연구, 과업 달성을 자극하기 위한 차별적 성과급, 계획 부문과 현장감독 부문을 전문화한 관리시스템이다.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법이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의 조합으로 구성된다고 역설한다. 주먹구구식 방법이 아닌 과학, 불화가 아닌 화합, 개인주의가 아닌 협업, 제한된 생산이 아닌 최대의 생산, 각 노동자가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번영을 이루게 하기 위한 노동자 개인의 능력 계발이 그것이다.


 과학적 관리법의 핵심은 시간과 동작 연구, 기록, 과업제도다. 시간·동작 연구는 한 번에 한사람의 작업자를 선발해 동작 하나하나의 시간을 측정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고 더 빠르게 생산하는데 필요한 도구를 개발한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메뉴얼로 만들어 한명의 노동자가 과도한 피곤을 느끼지 않고 최대로 작업할 수 있는 양을 뽑아낸다. 과업제도란 일한만큼 주는 방식이 아니라 이 연구를 통해 직원을 엄선하고 그들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과업 양을 제시하는 것이다. 책임자는 정확한 작업지시서와 관리를 통해 노동자가 과업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게 돕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지급한다. 테일러는 과업이 제대로 실행되고 관리될 수 있도록 기획부서와 기능별 직장제도를 고안했다.


 차별적 성과급제는 노동자가 과업을 달성했을 때는 높은 임금을 주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낮은 비율을 주는 임금제도였다. 이는 과업을 달성한 노동자가 이전에 비해 30~100퍼센트의 임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테일러는 차별적 성과급제의 성패가 기계와 작업에 관한 정밀한 시간 연구를 통해 적절한 과업을 구성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부는 이전에 숙련 노동자들이 가졌던 작업에 대한 지식을 관리자의 손으로 옮기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과학적 관리법의 기본 철학은 고용주와 노동자 모두 ‘최대 번영’을 누리는데 있다. ‘과학적 관리법’은 노사 양측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와 사회 전체에 더 큰 이익이 돌아간다는 게 테일러의 생각이다.  


 작업시간도 오래 일하게 하는 것보다 제한된 시간에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하루 10시간30분의 작업 시간을 10시간, 9시간30분, 9시간, 8시간30분으로 점차 단축하면서 임금은 동일하게 지불했을 때 산출량이 오히려 증가했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분명히 하고, 숙련도에 따라 공정에 투입하는 방식을 조정한 결과, 생산성이 높아졌다.

                                                                                             

                                                                             <프레드릭 테일러>


 테일러는 노동자의 태업을 막는 것이 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당시 노동자는 ‘기계의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테일러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생산성 증대와 원가절감을 통해 제품가격을 떨어뜨려야 수요가 늘어나고 새로운 고용이 창출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학적 관리법에는 네 가지 의무가 따른다. 첫째, 노동의 각 요소에 적용할 과학적 방법을 개발해 과거의 주먹구구식 방식을 대체해야 한다. 둘째, 과학적 원칙에 입각해 노동자들을 선발하고, 교육해야 한다. 셋째, 과학적 원칙을 상호 공감해야 한다. 넷째, 노사 간에 일과 책임을 균등하게 배분해야 한다.


 테일러 시스템은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주창한 ‘조립생산’과 결합하면서 대량생산 시대를 열어 시너지효과를 가져왔다. ‘과학적 관리법’은 미국 산업계를 점령한 데 이어 1920~30년대에 사회주의 소련으로도 수출됐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테일러리즘을 수용하면서 미국 전문가들을 소련으로 불러 들였다.
 테일러시스템은 기업과 산업계를 넘어 미국 사회 전체의 뉴 프런티어가 됐다. 미국이 모든 면에서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요인의 하나였다. ‘디지털 테일러리즘’이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해 세계를 제패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1905년 테일러의 경영 이론을 적용했던 타보 회사에서 한 기계노동자가 작업 중인 모습

              
 과학적 관리법이 미국에서 탄생한 게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견해도 많다. ‘노동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유럽인들은 종종 왜 미국인들이 살기 위해 일하기보다 일하기 위해 살까 하고 궁금해 한다. 그 대답은 효율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깊은 애착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인들은 효율성이 높을수록 더욱 하나님께 가까워진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테일러 역시 어렸을 때부터 ‘효율의 화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독특한 면을 보였다. 그는 학교까지 가는 길에 발걸음 수를 세어 가장 효율적인 보폭을 찾아낼 정도였다.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테일러는 무엇보다 게으른 것을 참지 못했다.

                               
 경영에 분업을 통한 전문화를 도입하고 과학적인 작업 방식을 정립한 테일러리즘은 막스 베버의 관료제와 더불어 기업조직과 경영활동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기본원리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테일러는 ‘노동 과학의 뉴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테일러리즘이 기업경영에 ‘효율성’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혁명적 사고였다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 경영이론이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에서 시작됐다는 데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피터 드러커는 ‘찰스 다윈-카를 마르크스-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현대세계를 창조한 삼위일체’로 평가를 받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만약 이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있다면 마르크스는 빼고 테일러를 대신 넣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드러커는 “19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던 마르크스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아닌 테일러리즘”이라고 단언했다.

                                                                                        

                                                                               <피터 드러커>


 그럼에도 테일러와 테일러시스템은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인간노동을 기계화했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은 테일러가 ‘노동자를 꼭두각시로 만들었다’고 화살을 퍼붓는다. 모두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목표 아래 노동자 하나하나를 높은 임금만을 주면 움직이는 기계부품처럼 취급해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학적 관리법이 노동자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주장에 대해 옹호론자들은 노동자들이 과업 수행 방식을 혁신하는 창의적인 제안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과학적 관리법은 현대 지식경영의 효시이기도 하다. 공정한 작업량을 설정하고 작업량에 따라 차별성과급을 주는 제도는 성과에 따른 연봉제를 추구하고 있는 현대기업이 추구하는 기본방향과도 일치한다.


 ‘훈련된 원숭이가 웬만한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일지라도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한 테일러의 표현은 테일러리즘 비판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때문에 테일러리즘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인본주의자들로부터 뭇매를 맞는다. 제3세계에서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널리 활용돼 ‘유혈적 테일러주의’(Bloody Taylorism)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테일러는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욕을 먹었지만 자본가들을 ‘돼지들’이라고 부르는 등 그들의 탐욕에 대해서도 독설을 퍼부은 탓에 처음엔 노사 양쪽에 배척을 받았다. 테일러는 이 같은 비판을 잘 알고 있다면서 결국엔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될 것이라는 말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드러커는 지적 역사에서 테일러보다 더 큰 영향을 준 인물이 거의 없었음에도 테일러만큼 의도적으로 왜곡된 사람도, 한결같이 잘못 인용되고 있는 사람도 없다고 개탄한다. 진보 진영과 노동계의 테일러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지만, 경영진은 테일러 편을 든다. ‘과학적 관리법’은 수정과 보완을 거쳐 우리의 일터를 지배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대졸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덩달아 ‘디지털 테일러리즘’이 확산했다. 지식노동을 세분화·규격화·자동화하는 프로세스를 통해 비용을 줄이는 기법인 디지털 테일러리즘은 지식노동자의 재량과 가치를 줄인 반면, 기업의 통제력과 이윤은 크게 늘렸다. 기업이 값싼 노동자를 세계에서 손쉽게 충당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노동자는 배운 만큼 벌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5년 7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