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가 내린 바로 다음날 일찌감치 대통령이 가뭄피해 현장을 찾은 모습은 다소 어색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요일인 어제 오전 최대 가뭄피해지역 가운데 하나인 강화도를 찾아 농민들을 격려했다. 공교롭게도 전날 강화도를 포함한 수도권에는 상당량의 비가 내렸다.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의 양은 프로야구 야간경기가 취소될 정도였다.

 

  강화도 역시 해갈이 될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에 따라 수도권의 다른 곳에 버금가는 강수량을 보였다. 3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인데다 어제 내린 비가 부족한 양이라니 최고지도자가 농사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광경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 박자씩 늦는 대통령의 언행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한 농민의 말이 흥미롭다. “대통령께서 오시니까 어제 단비가 내렸다. 올해 풍년 농사가 될 것 같다.” (‘어제 단비도 내렸다. 대통령님이 오셔서 아주 더 잘될 것 같다’고 말했다는 언론도 있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은 화급한 메르스 확산방지 때문에 가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게다. 그렇더라도 여러 차례 골든타임을 놓친 전례와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일주일 전에는 메르스로 인해 해외 관광객 급감과 국내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를 방문해 상인들을 격려한 대통령 동정을 청와대가 부적절하게 홍보하는 바람에 도리어 점수를 잃고 말았다. “주말을 맞아 쇼핑에 나선 시민들이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놀라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고, ‘진짜 박근혜 대통령 맞아? 대박!!’, ‘대통령 파이팅, 힘내세요’ 등을 외치며 몰려드는 탓에 근접 경호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호에 애를 먹기도…” 청와대의 이 같은 자화자찬은 민심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냉소만 이끌어냈다.


 며칠 전 삼성서울병원장이 충북 오송까지 불려가 대통령 앞에 두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은 ‘사과 받는 대통령’이 아니라 ‘사과하는 대통령’이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취임한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대신 사과했다. “당국이 국민 안전과 직결된 초기 대응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 점에 대해서 새로 총리가 된 입장에서 국민에게 송구하다.”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때 “대통령은 메르스 대처에 제 때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옹호해 빈축을 샀던 발언과 흐름을 같이 한다. 보여주기식 사과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대통령 참모들이 일축했다는 얘기까지 퍼져 나온다.


 첫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지 6일 지나서야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면보고를, 그것도 국무회의 자리에서 받는 등 늑장·부실 대응해 온 나라가 한 달 넘게 공포에 떨게 만들고도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세월호 참사 때 찔끔 사과와 늑장 사과로 홍역을 치렀던 기억을 더듬는 느낌이 든다. 지도자가 몸을 낮추는 모습을 꺼리는 것은 책임회피를 넘어 국민을 신민으로 여기는 것과 다름없다.

                                                                                                


 대통령이 새 총리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국민 불안을 야기하거나 혼란을 가중시키는 행위에 대해 엄중 대응해 달라”며 괴담 단속을 당부한 것도 입방아에 올랐다. 병역기피 의혹, 전관예우에다 각종 부적절한 과거행적으로 인해 자격을 의심받는 새 총리에게 ‘법무총리’가 되라는 주문부터 한 것은 메르스 대책의 잘못을 국민에게 지우려는 의도로 비치기 십상이다.


 임기 반환점을 두 달여 앞두고 지지율이 29%로 추락해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총체적인 국가 리더십 결여를 방증한다. 때맞춰 SNS에 ‘아, 모르겠어’라는 뜻을 지닌 ‘아몰랑 대통령’이란 별명이 유행 중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이유가 ‘메르스 확산 대처 미흡’이지만, ‘국정운영이 원활하지 않음’, ‘리더십 부족·책임 회피’, ‘소통 미흡·투명하지 않음’ 같은 종전의 비판요인들이 여전히 비중 있게 작용하고 있다. 무능과 권위적인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꿔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지도자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국민만 딱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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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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