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끊임없이 이상향을 갈망한 흔적은 동서양과 고금을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파라다이스, 고대 그리스의 아르카디아, 그리스 신화의 엘리시움, 남아메리카 아마존 강변에 있다는 상상 속의 엘도라도, 성경 속의 에덴동산, 불교의 정토(淨土), 중국의 무릉도원이나 낙원,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설정된 티베트의 샹그릴라,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섬 라퓨타, 허균의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어떤 이는 이상향을 유토피아와 아르카디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의지가 실현되는 인공적 이상사회다. 이에 비해 아르카디아는 양떼, 산새, 들새와 초원에서 평화롭게 사는 목가적 이상향이다. 동양에서는 요순시대와 무릉도원이 각기 두 가지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상향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유토피아, 아르카디아, 코케인(Cockayne), 천년왕국(Millennium)이 그것이다. 코케인은 노동이나 수고를 하지 않아도 욕구가 충족되는 환락원이다. 가난한 농부들이 주로 꿈꾼 세상이다. 천년왕국은 신의 섭리가 실현되는 의롭고 선한 사회다. 그 옛날 유럽 민중이 동경하던 세상이다.

                                                                                                  


 이 가운데 유토피아는 인간의 의지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수많은 사상가와 작가들이 갈구했다. 이상향을 얘기할 때 맨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유토피아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유토피아’는 1516년 플랑드르(현 벨기에) 루뱅에서 처음 출간한 토머스 모어의 같은 제목 소설(원제 (De optimo reipublicae statu, deque nova insula Utopia)에서 유래한다. 원제를 번역하면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다. 영역 본은 모어가 반역죄로 참수형에 처해진 지 16년 뒤인 1551년 모국인 영국에서 출판됐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없다’는 뜻의 ‘ou’와 ‘장소’를 뜻하는 ‘topos’를 합성한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완벽한 사회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사회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녔다. 하지만 이 소설이 출간된 뒤 ‘유토피아’는 모든 것이 완벽한 이상향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굳어졌다.

 

  라틴어로 쓴 이 작품에 모어는 맨 처음 라틴어식으로 ‘아무데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누스쿠아마’(Nusquama)라는 제목을 붙였다. 네덜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와 교유가 깊었던 모어는 영국으로 돌아온 후 누스쿠아마를 그리스식 이름인 유토피아로 바꿨다.


 작품은 지은이가 플랑드르 안트베르펜에서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라는 포르투갈 선원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는 형식을 띤다. 가상의 인물인 히슬로다에우스는 유명한 항해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따라 신세계를 여행하다가 유토피아 섬에서 5년 간 생활한 것으로 그려진다. 

                                                                                                

                                                                              <토머스 모어 초상화>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의 양대 철학은 평등과 쾌락이다. 평등과 쾌락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긴밀한 관계다. 유토피아의 가장 큰 특징은 공동소유 사회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지만 사유재산을 축적하지 않는다. 집과 옷을 비롯한 물품은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된다.

 

  남녀가 어렸을 때부터 평등하게 의무교육을 받는다. 모든 종교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다. 플라톤의 ‘국가’에도 공동소유제가 나오지만 귀족들만의 공산주의다. 이와 달리 유토피아는 모든 주민의 공산주의 체제다. 돈을 쓰지 않으며 금욕적인 무소유를 특징으로 하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사회주의 이론이나 현실 공산주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유토피아는 54개 자치도시로 구성되고, 주민이 뽑은 대표가 정치를 하는 민주주의 체제라는 점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인 공산주의와 다르다. 지배자도 없고 피지배자도 없다. 공직자는 대부분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1년이다. 


 경제기반은 공동소유제의 농업이다. 하나의 농장에는 40명 미만이 산다. 2년마다 도시인과 농민이 교체되며, 집도 10년마다 추첨으로 교환한다. 마을 회관에서는 모두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집도 나라에서 준다. 한마디로 ‘보편적 복지’가 실현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어 노동이 노예의 몫으로 돼 있는 플라톤의 ‘국가’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모든 사람이 노동을 하기 때문에 하루 6시간만 일한다.


 양대 철학의 다른 축인 쾌락은 개인적인 쾌락이 아니라 선과 도덕, 사회적 책임을 수반한 쾌락이다. 사람들은 정원 가꾸기를 즐긴다. 그들은 식사를 포함해 여러 가지 일을 공동으로 하며 사치와 허식을 배격한다.

                                                                                                

                                                                         <토머스 모어 가족>


 “양들은 언제나 온순하고 아주 적게 먹는 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양들이 너무나도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들까지 잡아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양들은 논과 집, 마을까지 황폐화시켜 버립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충격적인 표현 때문에 유명해진 이 구절은 15세기에 이뤄진 ‘인클로저’를 풍자하는 것이다. 인클로저는 15세기 중엽 이후, 주로 영국에서 지주계급이 개방지·공동지·황무지 등을 경계표지로 둘러싸고 사유화한 것을 말한다.


 순결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이 나라 사람들이 나체로 선을 보는 외설적인 모습도 등장한다. “결혼하려고 생각할 때, 신부가 될 여자는 처녀든 과부든 간에 존경할 만한 기혼 부인의 입회 아래 신랑이 될 남자에게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보이며, 신랑의 보호자는 신랑이 될 남자의 벗은 몸을 신부에게 보여줍니다.”


 이 책의 중요성은 이상향 추구 못지않게 사회비판의식에 있다. 현실비판은 네 가지다. 첫째, 정부의 과도한 엄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은 억제책으로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둘째, 거지·부랑자·도둑이 증가하는 원인에 대한 비판이다. 모어는 그것이 농촌에서 봉건 영주가 몰락하고 시종이나 농민이 추방된 탓이라고 본다. 셋째, 지나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다. 넷째는 정의롭지 못한 원인에 대한 비판이다. 모어는 이를 화폐에 대한 욕망, 사유재산제도에서 찾는다.


 유토피아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반전 평화주의다. 재물과 영토를 늘리기 위한 전쟁을 혐오한다. 모어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전쟁에 반대한다.

                                                                                              

                                                                                   <토머스 모어 경>
 모어 자신도 위대한 이상주의자였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선 어떤 양보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신념아래 목숨까지 바쳤다. 헨리 8세의 이혼과 영국국교 창립을 반대해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힌 모어는 1년에 걸친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았다.

 

  1534년 그가 단두대에 올라서자 사형 집행관이 도리어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러자 모어는 그를 끌어안고 오히려 격려했다. 그 때 남긴 말은 지금도 전 세계에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자네 일을 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게. 그리고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내 목을 치더라도 수염은 건드리지 말게.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다네.” 죽음의 공포마저 유쾌한 해학으로 극복할 만큼 대담한 모어였다. 

 
 그의 가정생활 역시 ‘유토피아’에 그려진 이상적인 삶에 가까운 것이었다. 모어는 자상한 아버지로서 가족들을 돌보았던 것은 물론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학문과 신앙을 신실하게 키워나갔다.


 ‘유토피아’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비교되곤 한다. ‘군주론’이 현실주의 정치철학을 낳았다면, ‘유토피아’는 이상주의적 사상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출간 이후 수많은 유토피언들이 나타났다. 로버트 오언, 샤를 푸리에 같은 낭만적 이상주의자들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과학적 사회주의자들도 넓게 보면 유토피안에 속한다. 모어는 당초 의도와 상관없이 공산주의의 원조 격이 되기도 했다. 독일 사상가 카를 카우츠키는 모어를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자’로 부각시켰다.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가와 혁명가’ 19명의 이름이 새겨진 모스크바의 볼셰비키 기념 오벨리스크에는 마르크스, 엥겔스와 함께 모어가 들어 있다.

                                                                                             

                                                                               <헨리 8세 초상화>


 학자들은 유토피아를 ‘진보의 원리’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노력’으로 이해한다.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은 유토피아를 ‘사회에 변화의 욕망을 불러일으켜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이념틀’이라고 규정했다. 역사학자인 주경철 서울대 교수는 유토피아를 ‘천년왕국설’과 견주어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리출판사가 ‘유토피아 노동’을 실천해 작은 화젯거리가 됐다. 보리출판사는 2012년 3월부터 ‘6시간 노동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유토피아는 수많은 파생어를 창출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모어의 ‘유토피아’를 넘어 ‘디지토피아’를 열었다는 비유도 나왔다. ‘테크놀로지’와 ‘유토피아’의 합성어인 ‘테크노피아’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는 단어를 ‘실제화된 한시적 유토피아’로 개념화했다. 어린이들이 부모 몰래 숨고 싶어 하는 이층 다락방 같은 공간, 신혼의 달콤한 꿈을 꾸는 여행지, 일상으로부터 탈출한 듯한 카니발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상사회인 유토피아는 그 반대인 ‘디스토피아’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디스토피아는 실패한 유토피아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같은 작품이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유토피아 실험으로 불리는 소련 공산주의는 70년 만에 막을 내렸다. 북한도 한때 스스로 유토피아 같은 나라라고 선전했다.

 ‘유토피아’처럼 중요한 개념, 그와 관련된 장르의 기원이 이처럼 분명하게 하나의 작품에서 유래한 사례는 흔치 않다. 1975년 설립된 유토피아 학회는 ‘유토피아 연구’라는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을 정도다. 내년이면 출간 500주년을 맞는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유토피아를 둘러싼 거대담론을 끊임없이 이어갈 게 분명하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5년 6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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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