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이야기(39)--<1984> 조지 오웰

 “2084년 구글은 빅 브라더가 된다.” 뉴욕 타임스는 2005년 구글 어스의 무서운 카메라를 이렇게 풍자했다. 뉴욕 타임스는 당시 2084년 구글의 가상 홈페이지를 그려놓고 사용자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구글이 보여줄 것이라며 냉소했다.

 

  1998년 말에 개봉한 미국 첩보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정보통신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전이 ‘감시사회’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일찌감치 예측했다. 강직한 변호사 로버트 클레이턴 딘(윌 스미스 분)의 명대사는 사생활 침해의 심각성을 고발한다. “정부가 우리 집 안방까지 침입할 권리는 없다.” “프라이버시는 사라졌다. 안전한 것은 오직 머릿속에 있는 것뿐이다.”


 두 사례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착안한 또 다른 경종이다. ‘1984’는 전체주의 비판과 함께 미래의 예지력이 담긴 명작으로 상찬 받는다.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전체주의가 인간의 육체뿐만 아니라 감정과 사고까지 철저히 파괴해 상상력마저 앗아가는 전율스러운 미래에 대한 경광등(警光燈)이다.

                                                                     

 

 ‘1984’는 당초 제목이 ‘유럽의 마지막 사람’이었다. 이를 너무 밋밋하게 여긴 출판사가 책 완성단계의 해인 1948년의 마지막 숫자 48을 84로 바꿔 제목으로 달았다고 한다.


  이 소설의 무대인 가상의 초강대국 오세아니아는 영사(영국사회당)의 우두머리인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1984년, 전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라는 거대한 3개 국가로 재편된다. 세 초강대국은 역설적이게도 끊임없이 전쟁을 벌임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 오세아니아에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협박하는 대형 포스터가 모든 거리와 건물에서 유령처럼 나부낀다.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이 걸려 있어 개인의 내밀한 삶까지도 샅샅이 감시한다.


 심지어 인적이 드문 숲속이나 들판에도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있다. 시내에는 수시로 헬리콥터가 떠다니며 건물 안을 들여다본다. 거리마다 사상경찰이 돌아다닌다. 반체제 인사는 고문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한다. 성욕까지도 국가가 통제한다. 결혼의 단 한 가지 목적은 당에 봉사할 아이를 낳기 위해서다.                                                                                      

                                                                           <빅 브라더 상징물>


  빅 브라더의 목표에 걸맞지 않으면 문서, 신문, 서적, 녹음, 영화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모든 기록을 수시로 삭제하고 조작한다. 당의 슬로건이 이론적으로 잘 뒷받침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모든 정부기관은 진리부, 평화부, 애정부(愛情部), 풍부부(豊富部) 네 개 부로 이뤄졌다. 부서 이름은 하는 일과 정반대다. 진리부는 보도·연예·교육·예술을 담당하지만 과거를 조작하는 일을 전담한다. 평화부는 전쟁을 맡는다. 애정부는 법과 질서를 엄격히 유지하는 일을 한다. 풍부부는 경제 문제를 책임진다. 지배자는 허황된 수치로 경제성과를 자랑하면서도 인민을 굶주리게 한다. 


  당은 기존 언어 대신 ‘신어’를 만든다. ‘신어’ 창조는 ‘좋은’의 반대가 ‘나쁜’이 아니라 ‘안 좋은’으로 바꾸는 것과 같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시작됐다.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휘를 줄임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을 단순화시켜 이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생계형 작가 조지 오웰>

 

   정부청사에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우아한 필체로 쓰여 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역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진리부에서 일하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자유는 2 더하기 2는 4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2 더하기 2는 5라고 소리친다.  


  ‘1984’는 전체주의라는 용어의 이미지를 정립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이 책에는 전체주의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스토리에서 연상되는 그림은 자연스레 전체주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이때부터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냉전체제 아래서 자본주의 국가들의 힘을 결집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정치용어로 자리 잡는다. 문학평론가들도 ‘1984’가 스탈린 치하에서 전체주의 국가로 변질하던 소련의 모습을 비판한 작품이라고 여겼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후에도 사실상 마지막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 ‘1984’의 디스토피아에 딱 들어맞는 나라로 지목된다. 북한을 다녀온 외국 언론인들은 한결같이 그곳이 ‘1984’의 복사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고 썼다. 최고의 북한 여행안내서가 바로 ‘1984’라고 표현한 기자도 있을 정도다.


  이 책을 스탈린주의가 중심이 되는 정치적 전체주의를 다룬 것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1984’에 담긴 오웰의 경고는 특정한 시대, 특정한 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권력이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감시하고, 특정 이익을 위해 사실과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한 그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초강대국 오세아니아에 속해 있는 ‘에어스트립 원’은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을 가리킨다. 윈스턴이 살고 있는 도시는 런던이다. 높이가 300미터나 되는 초고층 건물들과 인간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텔레스크린’ 등으로 미뤄 보아 오세아니아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다. 오세아니아 사회는 폭력과 억압만이 정치 이데올로기를 이루는 ‘정치적 전체주의’ 국가인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고도의 ‘기술적 전체주의’ 국가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정치적 전체주의’와 ‘기술적 전체주의’가 교묘하게 혼합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실제로 그가 그린 ‘감시사회’는 최첨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실감나게 재현된다.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감청 실태를 폭로해 세계적 파장을 일으킨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정부의 사생활 감시가 오웰의 소설 ‘1984’보다 심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첨단 전산 시스템인 프리즘이란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인 통신사와 IT기업 서버에 접속한 다음 개인 정보를 비롯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온 사실이 폭로된 이후 전문가들은 견제되지 않는 빅 데이터는 또 다른 ‘빅 브라더’를 낳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소설의 무대인 영국에서조차 세계에서 감시가 가장 일상화된 나라가 됐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영국 사생활 보호단체인 ‘빅브라더워치’는 영국에 최대 600만대의 CCTV가 설치·운용 중인 것으로 추산한다. 선진국 정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까지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빅 브라더’ 논란이 전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명박 정부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남경필 의원은 ‘1984’의 빅 브라더가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이버 사찰과 카드사의 대량 개인정보유출 사건이 터질 때마다 ‘1984’가 우려의 메시지로 호출되기도 한다.


 이동통신회사들이 스마트폰에 내장된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용자의 문자메시지, 이메일, 통화기록, 방문한 웹사이트, 열람한 동영상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음이 드러나자 ‘빅 브라더’가 따로 없다는 염려의 목소리가 지구촌 곳곳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독일에서는 ‘포에버드’라는 시민단체가 매년 빅브라더 상을 준다. 이 상은 개인정보를 가장 많이 침해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돌아간다. 눈길을 끄는 건 2004년 내무부장관이 받았다는 사실이다.


 현대판 ‘빅 브라더’ 논란은 이 책의 판매급증을 몰고 오기도 한다. 스노든 사건 직후 미국에서 한때 5800퍼센트의 매출증가율을 보였다. ‘1984’는 2008년 하버드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도서 1위, 2009년 ‘뉴스위크’ 선정 역대 세계 최고의 명저 2위에 뽑히기도 했다. ‘1984’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디스토피아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은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과 더불어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


 이 책은 수많은 신조어를 낳았다. 조직화되어 인간성을 잃은 ‘오웰리언’, 선전활동을 위한 사실의 조작과 왜곡을 의미하는 ‘오웰주의’, 감시가 심한 사회를 일컫는 ‘오웰리언 사회’, ‘오웰식 논리’, ‘오웰식 사상’, ‘오웰식 각성’, ‘오웰식 사고방법’ 같은 용어가 새로 탄생했다. ‘빅 브라더’는 정보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을 의미하는 대명사가 됐다. ‘빅 브라더’는 미국에서 출간된 책 ‘가장 영향력 있는 허구 인물 101명’ 가운데 인류의 삶을 바꾼 가상인물 2위에 꼽혔다.

                                                                                         


 ‘오웰식 언어’라고도 불리는 이중화법 표현은 ‘불경기’나 ‘경기 후퇴’라는 말 대신 ‘경기 순환’ 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둘러대는 식이다. ‘실업’은 ‘미고용’, ‘증세’는 ‘세입 증대책’, ‘가격 인상’은 ‘가격 현실화’라는 단어로 치환된다. ‘1984’는 정치 지도자들이 시민들에게 주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말을 에두르거나 모순된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고 빗댔다.


 이 작품은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도 주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는 ‘1984’에서 문제의식을 빌렸다.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의 동명영화 ‘1984’와 리들리 스콧이 만든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 CF도 같은 해에 나왔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역시 오웰의 세계를 패러디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9년 가장 직접적이고도 창조적인 ‘1984’ 오마주인 ‘1Q84’를 바쳤다.


 미국 미래학자 데이비드 굿먼이 1972년 ‘1984’에서 예언한 137가지를 검토해 보았을 때 80가지가 실현됐으며, 1978년에 다시 비교했더니 실현된 게 무려 100가지가 넘었다고 한다. 지금 조사해보면 95퍼센트 이상이 맞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문학의 놀라운 예언력을 방증하는 통계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5년 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