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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인식 간극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저로 떨어진 원인 가운데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소통미흡’이다. 취임 초 첫 손가락에 오르던 인사실패와 순서가 바뀌었지만, 불통(不通)과 인사실패는 무관하지 않다. 지난 2년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면 불통 기조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스멀스멀 나온다. 소통에 대한 인식부터 대통령과 국민이 천양지차라는 게 확연해졌기 때문이다.


 소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감임에도 인식의 기본부터 아귀가 서로 맞지 않는다. 생각의 괴리는 신년 기자회견에 이어 지난 주말 서둘러 발표한 국무총리 교체와 청와대 인사 개편내용에서도 새삼 드러난다.

 

   국민은 대통령이 직접 다방면에 걸쳐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기를 원하지만 대통령은 내각이나 청와대 특보(특별보좌관)를 통해 ‘대리소통’하도록 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국민을 대변하는 언론과 보다 많은 소통을 주문하면 대통령은 전통시장 같은 민생 현장과 정책 현장을 찾아가 국민들과 직접 대화를 잘하고 있는데 뭔 얘기냐고 핀잔을 준다. 취임 이후 일관된 자세다.

                                                                                        

                                                            <박근혜 대통령 2015년 신년 기자회견 자료 사진>


 국정최고책임자가 마지못해 하는 의무방어전처럼 느껴지는 신년 기자회견만으로 언론과 소통했다는 민주적인 선진국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미국 대통령들은 심지어 헬리콥터를 타러 가다가도 기자들이 질문하면 뭐든지 진솔하고 자신 있게 답변해 준다. 언론접촉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비판받은 아들 부시 대통령까지도 그랬다. 박 대통령의 올해 신년회견을 보면 기자들과 자주 만나지 않는 게 자신감의 결여로 비칠 여지가 많다.


 청와대 참모나 각료들과의 소통 인식도 큰 차이가 없다. 보고서와 전화에 의존하지 말고 대면 보고를 통해 마음이 느껴지는 소통을 건의하면, 편리한 통신수단을 상기시키며 그런 게 꼭 필요하냐고 되묻는 식이다. 대통령과 여·야 정당, 여론주도계층, 국민 간의 진정한 소통은 대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느낌을 준다. 국회의장도 대통령과 직통전화가 되지 않는다니 더할 말이 있겠는가. 박 대통령은 당 대표시절에도 측근 비서관들을 통해야 주요 인사들과 소통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주로 하는 습관이다. 그것도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각료나 참모들을 앞에서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국민이 간절하게 ‘듣고 싶은 말’은 애써 피해가거나 동문서답으로 응수하기도 한다. 동문서답이 정치인의 책임회피수법으로 동원되는 사례가 이따금 있긴 하지만, 국정최고책임자가 취할 자세는 아니다. 새해 기자회견 후 ‘콘크리트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 든다’며 야당이 붙여준 ‘말이 안통하네트’(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빗댄 표현)란 별명을 다시 들춘 보수언론 논설위원의 칼럼이 나왔을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 전통시장 방문 자료 사진>


 대통령이 현대사회의 수평적 리더십에서 필수적인 토론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소통문제와 상관관계가 적지 않다.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보고를 하면 토론보다 대통령이 코멘트를 하는 식으로 회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건 이런 분위기를 방증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하고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박 대통령은 ‘외롭고 고독한 사자’라는 별칭이 붙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견된다. 대면보고가 활성화되지 않고 서류로 소통하는 것도 이런 성향과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 수석비서관도 대통령에게 보고하러 갔다가 문고리 비서관이 보고서만 놓고 가라고 해서 그냥 놓고 왔다는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히 수석비서관실 간의 수평적 소통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절반에 가까운 중도진보계층과 소통노력조차 등한시한다는 사실이다. 전 국민의 대통령이면서도 편가르기 전략으로 반쪽을 사실상 열외로 여기는 것은 인식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이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한때 뜻을 같이 했던 인사들까지 꼬집는다. 이런 소통의 문제점은 보수·진보진영을 가리지 않고 한목소리로 끊임없이 전달되지만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수 국민이 대통령의 불통을 걱정하는 것과 달리 대통령 자신은 불통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이보다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