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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

 미국 언론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붙여준 별명은 ‘검은 링컨’이다. 오바마는 21세기 ‘링컨의 부활’이라고 할 정도로 에이브러햄 링컨의 길을 좇는다. ‘노예해방’을 단행한 링컨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탄생하는 시발점이 된 사실을 떠올리면 너무나 당연한 듯싶다. 하지만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니다. 통합과 관용의 정치철학을 지녔던 링컨의 리더십이 안성맞춤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게 더 큰 요인이다.


 오바마는 링컨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오바마가 일리노이 주에서 정치에 입문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취임식 때 링컨처럼 필라델피아에서 ‘통합의 열차’를 타고 워싱턴에 입성했다. 그는 취임선서 때도 링컨이 사용했던 성경에 손을 얹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부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성경을 사용했던 것과 달랐다. 취임식 주제로 사용한 ‘자유의 새로운 탄생’ 역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따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오바마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를 선언한 것도 링컨의 철학을 실천한 것이나 다름없다. “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링컨의 명언이자 리더십의 요체다. 링컨은 실제로 자신에게 모욕을 안긴 정치적 적수들을 모두 각료로 임명해 친구로 만들어버렸다. 오바마는 아무도 풀지 못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른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대담하게 문제를 풀었다.


  미국은 53년 동안 철저한 쿠바 봉쇄정책으로 일관해왔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원수 같았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을 암살하기 위해 638가지 방법을 시도했다는 통계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카스트로 역시 열렬한 링컨 숭배자였다. 카스트로는 “누구도 동의 없이 어떤 사람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링컨의 명언을 즐겨 인용했다. 미국을 비난할 때도 링컨을 동원했다. “미국은 링컨의 숭고한 정신과 거리가 멀다.”


 그런 미국이 쿠바 봉쇄정책이 잘못됐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토로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쿠바 관계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하자 자연스레 세계의 시선은 북한으로 향한다. 미국과 적대관계인 나라는 쿠바의 형제국인 북한 밖에 남지 않아서다. 역설적이게도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발표한 17일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이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사실상 권력을 승계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비슷한 시각에 소니 픽처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김정은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 상영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미국정부가 지목한 북한 해커들의 테러 위협으로 극장들이 상영계획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인권 문제로 첨예한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미 관계다. 쿠바처럼 관계개선 분위기가 호전되기는커녕 악화되고 있어 걱정스럽다.

                                                                                            

                                                                            <피델 카스트로>
 그렇지만 최근의 긴장관계를 넘어 미국은 유일한 적대국인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마땅하다. 북한이 상응하는 조치로 뒷받침해야함은 물론이다. 피델 카스트로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정권을 이어받은 후 꾸준히 실용주의적 개혁조치를 단행해 왔듯이 북한도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추진 자체가 북한에게는 중요한 메시지다.


 미-쿠바 관계정상화를 적극 주선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매우 상징적인 지론을 폈다. “문제가 있으면 대화가 필요하고, 문제가 클수록 대화의 필요성도 커진다.” 오바마가 쿠바와의 관계를 털어놓았듯이, 북한에 대해서도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당장은 분위기가 꼬여 있는 상태지만, 결국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교황의 역할은 한국이 맡을 수밖에 없다. 신뢰는 한 쪽의 일방적 조치로 쌓이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전략적 인내’는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