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대통령의 홍보부족 타령

 

 박근혜 대통령의 정부 홍보부족 타령은 조금 유별나다. 언론이 크게 부각하지 않아 일반 국민의 체감온도는 낮지만, 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홍보 불만을 쏟아놓는다. 공직사회는 홍보 노이로제가 걸려 있을 정도다.


 지난달 중순 출범한 2기 내각에 박 대통령이 특별히 주문한 것도 바로 ‘정책 홍보에 각별히 신경을 써 달라’는 것이다. “정책을 만드는 데 10%의 힘을 기울였다면 나머지 90%는 홍보와 점검에 쏟아주길 바란다.” 임명장을 준 뒤 비공개로 진행된 환담 때도 홍보의 중요성을 몇 번이나 역설했다고 한다. ‘90% 가운데 홍보가 40%, 점검이 50%’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덧붙였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24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도 “온갖 정책을 쏟아내도 국민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며 홍보를 첫 손가락에 꼽았다.

  지난해 12월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국민이 모르면 그 정책은 없는 것과 같다”며 정책홍보를 독려했다. 박 대통령은 12월 들어 자신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자 정부의 홍보 부족을 공개적으로 타박하기에 이렀다. 신년 초에도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원외당협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지난해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을 국민께 전달하는 면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화룡점정은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지명이 아닌가 싶다. 관가에서는 이례적으로 영상·디자인 분야 전문가인 김종덕 홍익대 교수를 문화부 장관으로 내정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 홍보 능력이 부족하다는 박 대통령의 판단이 이번 인선에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후보자의 발탁을 보면서 광고·홍보 전문가인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의 영입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2012년 1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은 조 본부장의 발굴과 더불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총선과 대선에서 쏠쏠하게 재미를 봤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 대해 ‘국민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각인돼 있는 듯하다. 사실 이런 인식은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른 역대 대통령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외는 거의 없었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과 4대강 사업 등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자 홍보 부족을 탓하며, 공직자 모두가 국민에게 정부정책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닦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5년 5월 국무회의에서 홍보가 빠진 정책은 완결성을 갖춘 것이라 볼 수 없다며 장관들을 다그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예 폐지했던 국정홍보처를 부활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나마 청와대 출입기자와 간담회를 정례화하는 등 국정홍보의 전면에 나서는 정공법을 택했다. 대통령들의 이 같은 홍보타령이 효험을 봤다는 호평은 들어보지 못했다. 
                                                                

                                                      <청와대 로고>

 

  정부나 민간의 어떤 일이든 홍보가 중요한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품질이 충실하지 않는 정책이나 실책을 홍보로만 만회하겠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관건은 신뢰다. 박 대통령의 문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호통을 친 광역버스 입석금지 정책이 홍보부족만으로 시민의 비난을 받은 건 아니다. 정부 차원의 홍보가 부족하더라도 진정으로 좋은 정책이라면 국민 스스로 앞장서서 알리고 싶을 게다.

 지금의 위기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공감능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소통하지 못하는 대통령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취임 1년 반이 지났지만, 단 한차례 형식적인 기자회견을 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을 본받음직하다. “좋은 대통령은 스스로 세계에서 으뜸가는 홍보맨이 돼야 한다는 느낌을 늘 가지고 살아왔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적절한 것이라는 믿음을 온 나라가 공유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