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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푸들에게 진돗개 정신을?

 푸들은 영리하고 애교만점인 반려견의 상징이지만 정치지도자나 고위공직자의 별명이 되면 달갑잖은 오명으로 표변한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총리,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푸들 정치인이란 별명의 대표주자다. 이들은 하나같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잘도 따랐기 때문이다.


  블레어는 유난스러울 정도였다. 그에게는 나라 안팎에서 ‘부시의 푸들’이라는 별명이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아 있다. 노동당에 우호적인 신문인 데일리 미러조차 노동당 출신 총리인 그를 ‘블레어 총리’(PM Blair)라는 표현 대신 ‘푸들 블레어’(Poodle Blair)라고 썼다. 블레어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당시 이를 의식한 부시가 적극 두둔하고 나섰지만 깊은 낙인이 사라질 리 없다. “블레어를 푸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큰일을 방해하기 위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종류의 수군거림은 어리석고 유치한 짓일 뿐이다. 그는 (푸들이 아닌) 개처럼 집요한 리더십을 가졌다.”
                                                               

                                                   <푸들 자료 사진>

 

 한국인에게 푸들과 대척점으로 인식되는 애견은 단연 토종 진돗개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 들어 쏟아내고 있는 강렬한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건 참모와 각료들에게 주문한 ‘진돗개 정신’이다. 진돗개는 충성심이 강한 것은 물론 대담하고 용맹스럽기로 이름이 드높다. 박 대통령도 자신이 키우고 있는 진돗개의 이런 특성을 간절하게 여긴 듯하다.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겨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 우리는 진돗개 정신으로 일해야 한다.”


 

   정권의 성패를 걸고 있는 규제개혁과 공공부분 혁신에서 사생결단식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동하는 데는 진돗개 정신만큼 요긴한 것도 없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우리의 원수’ ‘쳐부술 원수’로까지 표적을 만든 만큼 당연한 대응일 법하다.


 

  문제는 아무에게나 진돗개 정신을 기대할 수 있느냐다. 1년 넘게 박 대통령의 인사 철학을 지켜봐온 국민은 푸들에게 진돗개 정신을 요구하는 엇박자를 먼저 떠올린다.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꾸준히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지만 국민통합, 소통과 더불어 잘못하고 있는 분야로 인사가 꼽힌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청와대 비서진이나 장관들이 대부분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보신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는 평가는 이미 내려져 있는 상태다. 국정의 큰 그림을 그려 창조적으로 일해야 할 이들은 잘 받아 적어야 살아남는다는 풍자적인 사자성어 ‘적자생존’의 희화화 대상이 된지 오래다.
                                                                                       

                                                                            <진돗개 자료 사진>

 박 대통령은 자신이 선택한 각료와 수석비서관들이 창의적이고 진돗개처럼 끈질긴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나라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이 푸들처럼 느껴진다. 진돗개처럼 보이는 참모도 더러 있긴 하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나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같은 이들이다. 그마나 충성심 과잉으로 사고를 치는 진돗개가 있는 것도 골칫덩어리다.


 

    박 대통령에게는 경제살리기 난제 외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벌이는 거대한 체스게임이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의 국력이 만만찮아졌다지만 구한말을 연상한다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러시아에 손 한 번 쓰지 못하는 강대국들과 국제사회를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걱정이 태산 같다. 게다가 통일대박론까지 선창한 터라 국정은 혼자서 만기친람(萬機親覽)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인기 사극의 시류를 탄 발언이지만 조선의 토대를 닦은 정도전 같은 인물대망론이 사방에서 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권력누수를 염려해 최고의 인재보다 고분고분한 참모만 끝까지 선호한다면, 고정 지지층이 두터운 현재의 지지도는 지켜낼지 모르지만 역사의 법정에서는 사뭇 다르게 평가받을 게다. 규제개혁과 공공부문 혁신이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밀어붙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안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 무능 지휘관 평가가 내려진 각료와 참모들은 과감히 교체해 관료조직에 활력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현실적으로 두 달 남짓 남은 지방선거가 부담스러워 머뭇거린다면 지금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놓아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