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인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 명언만큼 아우슈비츠(폴란드 지명 오시비엥침) 수용소의 참극을 잘 웅변하는 말도 찾기 어렵다.

 

   일부 문학인이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비약시킨 이 말(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연상한 의도적인 오역이라는 견해도 있다)은,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떠올려보면 더 이상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懷疑)와 비탄의 동의어다. 한 신학자는 아도르노의 말을 비틀어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신학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돌프 히틀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아우슈비츠다. 히틀러가 이끈 나치 독일은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아우슈비츠는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상징어가 됐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합하면 600만 명에 이른다는 추계까지 나와 있다.
                                                                     

 

   전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참극의 역사는 히틀러의 유일한 저서이자 자서전인 ‘나의 투쟁’(원제 Mein Kampf)에서 이미 시작됐다. ‘나의 투쟁’은 머지않아 유럽을 피로 물들일 광기의 전주곡이었다. 철저한 인종주의자·군국주의자·극우 보수주의자인 히틀러는 지독하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유대인에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자서전 곳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저주의 눈빛이 번뜩인다. “유대인은 유목민도 아니고 늘 다른 민족의 체내에 사는 기생충일 뿐이다. 더구나 그들이 종종 지금까지 살고 있던 생활권을 버린 것은,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때에 따라 악용한 숙주 민족에 의해 추방당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자살하는 순간까지도 독일 패전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렸다.


 

  ‘나의 투쟁’에 나타난 히틀러의 인종차별적 사고는 표독하고도 뿌리 깊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에서 눈에 띄는 인종집단 때문에 나는 불쾌했다. 체코인, 폴란드인, 헝가리인, 루마니아인, 세르비아인, 그루지야인 등 여러 민족의 혼합은 혐오스러웠다. 특히 인류의 영원한 박테리아는 더욱 불쾌했다. 유대인, 또 유대인이었다.” “자연은 약한 개체와 강한 개체와의 결합을 원치 않는다. 열등한 민족과 우수한 민족의 결합 또한 바라지 않는다. 그런 결합으로 인해 오랜 세월에 걸친 자연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돌프 히틀러>


  독일 민족의 주류인 아리안 족에 대한 히틀러의 자긍심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아리아 인종은 지적 능력보다는 오히려 자기 능력의 일부를 사회를 위해 기꺼이 바치는 점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다. 오늘날 아리아 인종이 세계에서 그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원인은, 다른 민족의 이기적 관념에 대립하여 이상주의적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적으로 우월한 강자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가 그 과업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 세계사적 사명이다.”

 

   히틀러는 이 책에서 독일국민에게 순수혈통 보전을 다그친다. “우리의 투쟁 목적은 우리 인종, 우리 민족의 존립과 증식의 확보, 자손들의 부양, 혈통의 순결성 유지, 조국의 자유와 독립에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만물의 창조주에서 위탁받은 사명을 달성할 때까지 생육하는 데 있다.” 그는 후손들에게 인종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이 책은 히틀러가 대중 선동과 선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을 길게 서술하고 있다. “선전이란 대중이 가슴 속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보다 많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나아가서는 이들의 속마음을 사로잡기에 적당한 심리적 수단을 찾는 것이다.” “선전은 모두 대중적이어야 하며, 그 지적 수준은 선전이 목표로 하는 대상 가운데 최하 부류까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조정되어야 한다. 끌어들여야할 대중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한 지적 수준도 더욱 낮추어야 한다.” 


   히틀러는 국민의 눈을 가리는 심리 선전술에 대해 이렇게 썼다. “민중의 압도적인 다수는, 냉정한 숙고보다는 차라리 여성처럼 감정적으로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나 이 감정은 복잡하지 않으며, 매우 단순하고 폐쇄적이다. 그들의 감정에는 음영이 거의 없고 오직 대립만 존재할 따름이다. 즉 이쪽 절반은 그렇고 저쪽 절반은 그렇지 않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다. 애정인가 증오인가, 긍정인가 부정인가, 진실인가 거짓인가 하는 것뿐이다.” 
                                                                   

                                                   <히틀러의 연인 에바 브라운>

 

   히틀러는 ‘대중을 속이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거짓말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고 나치당원들을 부추긴다. “거짓말을 하려면 크게 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믿게 된다.” “대중의 이해력은 매우 부족하며 잊어버리는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히틀러는 이 책에서 유명한 ‘대중의 국민화’를 역설한다. “무수한 대중을 국민으로 만드는 일은 소위 객관적 관점을 나약하게 강조하는 어정쩡한 방식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목표를 향해 무자비하고 광적이며 일방적으로 나아가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다.” 


 

  히틀러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는 까닭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글보다는 말이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는 더욱 효과적이며, 세계의 모든 위대한 운동은 위대한 문필가가 아니라 위대한 연설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교설을 일관적·통일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그 원칙적인 것이 영원히 글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우리가 함께 수행해 나가는 사업에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이 책은 히틀러의 모든 정치 철학이 녹아있는 ‘나치즘의 경전’으로 평가된다. 그는 반민주적 정치사상과 반유대주의를 설파하는 한편, 동유럽의 유대인들을 추방하고 게르만족의 대제국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한다. “나는 아주 옛날부터 의회를 증오하고 있었다.” “평화라는 것은 궁상맞은 평화론자와 같은 곡녀(哭女)의 종려나무 잎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보다 높은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려는 지배 민족의 승리의 칼에 의해 수립된다.”


 

   히틀러는 ‘뮌헨 봉기’ 이후 란츠베르크 감옥에서 ‘나의 투쟁’을 구상해 1925~1927년에 걸쳐 2권으로 출간했다. 그는 출감 후 자기 생각을 비서 루돌프 헤스에게 받아 적게 했다. 당초 제목은 ‘허위, 우열, 비겁에 대한 4년간의 투쟁’이었으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게 좋겠다는 출판사 사장의 권유로 제목을 바꿨다.
  히틀러가 ‘나의 투쟁’을 쓴 직접적인 동기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뮌헨 봉기로 ‘인기 스타’가 된 기회를 이용해 돈을 벌어보라는 나치당 출판부장 막스 아만의 제안에 응했다는 게 첫 번째 설이다. 두 번째 설은 동료였던 그레고르 슈트라서가 히틀러의 감방 동료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책을 쓰라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형무소에 수감돼 있으면서 끊임없이 ‘개똥철학’ 같은 걸 늘어놓았다고 한다.

   책의 내용과 글 실력은 수준 이하라는 혹평이 뒤따른다. 터무니없는 과장과 성급한 일반화 등이 곳곳에 드러난다. 비문과 오류가 많아 함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조차 “이해할 수 없고 한심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악평했다. 히틀러 스스로 악문(惡文)이며 함량 미달임을 시인했다는 설도 전해온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


  하지만 이 책은 나치 시절 독일 국민의 필독서나 다름없었다. 이 책이 인기를 끈 것은 민족주의를 앞세워 독일 국민을 결집시키려 했던 히틀러의 정치적 계산이 당시 독일의 처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순수 아리안혈통을 대표하는 게르만민족의 대제국을 건설하자’는 히틀러의 선동이 먹혀든 것이다.


 

   이 책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나치의 바이블로 삼은 뒤 1000만~2000만부나 팔려나갔다는 설이 전해진다. 나치 정권은 ‘나의 투쟁’을 학생과 병사들에게 배포한 것은 물론 신혼부부들에게 선물로 줬다고 한다.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지녔던 독일의 명장 에르빈 롬멜 장군이 이 책을 직접 선물로 받고 히틀러의 신뢰를 확인했다는 일화도 흥미롭다.

 

    책값은 전액 국가예산에서 지출됐다. 히틀러는 엄청난 인세 수입을 올렸다. 히틀러는 그 돈을 스위스 UBS 은행에 넣어 측근이 관리하게 했다.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은 히틀러의 공식적인 증빙서류에 ‘나의 투쟁’을 팔아서 번 인세가 소득의 전부라고 적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투쟁’은 세상을 너무나 부정적으로 바꾼 책의 대표적인 사례다. 아니 인류에게 재앙을 불러온 책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독일에서는 1945년 이후 이 책을 출판 금지하고 있다. 법률로 나치를 찬양하는 책의 배포를 엄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진정한 출판금지 이유는 나치 피해자에 대한 배려다.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도 이 책은 금서로 지정돼 있다.


 

   이와는 달리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1월8일을 생일을 맞아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급 간부들에게 ‘나의 투쟁’을 선물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김정은이 고위 간부들에게 ‘핵과 경제 병진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을 짧은 기간에 재건한 히틀러의 ‘제3제국’을 잘 연구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와 맞물린 시기였다.


 

   ‘나의 투쟁’은 유럽 경제위기로 이민자 배척 정서가 확산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신나치주의자나 극우세력에 의해 합법적 선전도구로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2005년을 전후해 터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사실 이 책은 한 인간의 그릇된 집념과 비뚤어진 역사의식, 왜곡된 민족주의가 저지른 죄악을 반면교사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세사라니는 이 책이 젊은 세대에게 홀로코스트에 관한 독일의 책임을 가르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려한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4년 1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