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는 낙인효과로 안성맞춤인 경우가 숱하다. 이명박 정부 때 붙여진 ‘고소영’이란 유행어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낙인의 상흔이 크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 정부가 낳은 ‘개인적 일탈’이라는 유행어도 어쩌면 같은 반열에 오를지 모른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의 약칭)이란 낙인은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 만든 게 아니라 해학적으로 붙여준 딱지이지만 ‘개인적 일탈’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적으로 유행시킨 말이라는 점이 다르다.


  박근혜 정부의 의혹사건은 ‘개인적 일탈’이라고만 발표하면 모범답안이 된다. 매뉴얼로 정해 놓은 건 아닐 듯 한데도 하나같이 ‘개인적 일탈’로 수렴한다. 1년 가까이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는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 모 씨의 인터넷 댓글 작업부터 ‘개인적 일탈’ 행위였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 댓글 활동이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었으나 ‘개인적 일탈’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도 ‘개인적 일탈’로 마무리됐다. 뒤늦게 드러난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글 역시 국방부가 ‘개인적 일탈’로 귀결시켰다.

                                                                                            

                                                                        <JTBC뉴스 자료 사진>


  결정타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논란대상으로 떠오른 소년의 개인정보 유출 과정에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이 연루된 사건이다. 대통령의 입인 이정현 홍보수석비서관이 조오영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로 규정하자 박근혜 정부는 ‘개인적 일탈’ 정부로 낙인을 굳힌다. 그것도 의혹이 제기된 직후 ‘본인이 아니라고 한다’에서 ‘경위 파악 중’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개인적 일탈’로 상황이 돌변하자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란 딱지가 붙은 것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검찰총장의 뒷조사를 청와대 행정관이 혼자서 했다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 아닌가’라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한 보수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개인적 일탈’ 해명에 대한 불신이 물씬 풍겨 나온다. ‘청와대 행정관 일탈행위’라는 의견이 25.5%에 불과한 반면 ‘조직적 행동’이라는 견해는 그 두 배도 넘는 58%에 이른다. 해명은 듣는 이가 납득할 수 있을 때 약효가 있는 법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해 주는 조사결과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자료 사진>


   더욱 황당한 일은 국정원이 ‘개인적 일탈’ 행위라고 주장했던 여직원 김 모 씨의 변호사 비용 3300만원을 국가 예산에서 지원한 것으로 밝혀진 뒷얘기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명처럼 ‘개인적 일탈’ 행위라면 당연히 중징계감이다. 그럼에도 징계는커녕 변호사비용을 대신 내줬다면 이 역시 징계감이다. 국정원 측은 김 씨가 돈이 없어 국정원 예산으로 지원한 뒤 국정원 직원들이 모금한 돈으로 모두 채워넣었다는, 괴이한 변명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인적 일탈’로 국정원의 명예를 실추해 처벌받아야할 직원을 위해 동료들이 모금운동을 했다는 아귀가 맞지 않은 논리다.


  규정짓기는 범죄행위나 과오의 차원을 결정한다. ‘개인적 일탈’ 규정은 대표적인 조직범죄의 꼬리 자르기 수법이다. 벌써부터 이번 사건을 ‘개인적 일탈’로 규정한 청와대의 위세 때문에 검찰이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무리하게 ‘개인적 일탈’로 축소하려다 보면 ‘거짓말의 눈덩이 효과’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한 가지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거짓말이 필요한 상황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궁지에 처하는 꼴이다. 사건을 축소하는 데 급급한 청와대의 태도가 외려 키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 일탈’ 정부라는 낙인이 굳어지면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무기인 신뢰가 치명상을 입는다. 박근혜 정부의 신뢰는 임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원상회복이 어려울 만큼 금이 간 상태다. 그렇잖아도 대선 당시의 공약이 상당 부분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조차 등을 돌리거나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징후가 점점 짙어간다. 공자가 식량과 군사력보다 중요한 게 신뢰라고 역설했던 사실을 너무나 잘 기억하는 박 대통령이기에 더욱 걱정스럽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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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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