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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세계 정상급 호화·특혜 국회의 변명

 

 국가예산과 재정 문제에 가장 정통한 국회의원 가운데 한 사람이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다. 그는 평소 국가부채와 재정위기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는 걸로 정평이 났다. 지난주에도 신축 국회의원회관이 호화판 논란에 휩싸이자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아비판과 함께 반성문을 썼다. “우리 국회의원 회관이 국민들 눈에 좀 지나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2008년 의원회관 신축공사를 시작할 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호화 지방자치단체 신축청사에 대해 호통을 쳤다. “2005년 이후 신축된 15개 지자체 청사의 평균 에너지 사용량은 전체 청사 평균의 2배였고, 직원 1인당 에너지 사용량도 평균의 1.5배에 달했다. 유리 외벽 신청사는 한여름이나 겨울철에 냉난방장치 가동률이 높아 ‘전기 먹는 하마’라는 지적이 많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연출하려고 국민 세금을 낭비해 ’호화 찜통‘을 만든 셈이다.” 그는 신축 중이던 의원회관이 지자체의 호화 신축청사처럼 모든 외벽을 특수 코팅된 이중 고급유리로 치장하고 있던 사실을 몰랐을까? 
                                                              

  

 외관의 95%를 유리로 덮은 데 대한 국회사무처의 해명이 단연 백미(白眉)다. “의정 공간을 투명하게 국민에게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유리를 선택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그 정도로 투명하고 청렴하게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니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겠다. 골프장에서 번개가 쳐도 카메라 플래시인줄 알고 웃음을 짓는다는 국회의원들이지만, 사진이 찍혀 언론에 공개될까봐 새 회관 준공식에는 여야 지도부가 대부분 불참했다.

 신축 의원회관을 들어가 본 일반인들은 하나같이 호화 백화점이나 고급 호텔 같다고 입을 모은다. 순 건축비용만 2천억 원에 이른다. 1만 여 명이 상주하는 서울시 신청사와 맞먹는 수준이다. 3천여억 원을 들여 여론의 뭇매를 맞은 성남시 신청사 건축비도 부지 매입비용을 빼면 1456억 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건물이 오래됐다고 호화 의원회관을 짓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없다.

 의원회관을 새로 지은 것은 당초 3~4명이던 게 9명으로 늘어난 보좌관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우리나라 의원 보좌관 숫자는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다. 나쁜 것은 흉내 내면서 미국의원들이 오래 전에 반납한 200여 가지 특혜는 모조리 챙긴다. 우리보다 잘 사는 일본 국회의원의 보좌관 숫자는 3명뿐이다. 사무실 면적도 12~13평에 불과하다. 일본보다 더 잘 사는 스위스 국회의원은 별도의 의원실도, 보좌관도 없다. 금배지도 달지 않는다. 5~6평 남짓한 사무실을 3명의 의원이 나눠 쓰는 영국 상원의원들은 체면이 깎이지 않는 걸까.
                                                                

 소파와 사무용 집기류, 카펫을 대부분 새 걸로 교체한 것도 의원들이 바뀌었기 때문이란다. 미국 대통령들이 전임자가 써 온 헌 책상과 집기를 그대로 물려받는 건 자존심이 없기 때문일까.

 재산이 수조 원에 달하거나 부패·뇌물로 얼룩진 의원들까지 단 하루만 배지를 달아도 국민의 피같은 세금으로 매달 120만원의 연금을 평생토록 챙기는 것은 수백 번을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다. 일반 국민이 매달 120만원의 연금을 받으려면 30년간 월 30만 원씩을 부어야 가능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2.5배가량 되는 스웨덴의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12년 이상 지내야 연금을 받을 수 있고, 임기 중에 관용차나 운전기사도 없다. 어느 선진국을 가 봐도 우리 국회의원들처럼 한결같이 고급승용차를 타고, 특권 누리기에 혈안인 된 나라는 없다. 선진 복지·교육 시스템은 모조리 북유럽국가를 본받자는 국회의원들조차 특권이 없고 검소한 북유럽 의원을 따라하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익을 스스로 챙기는 국회의원에게 누구도 제동을 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창피는 순간이요, 이익은 영원하다’는 속설을 너무도 잘 지킨다. 자기 이름이 들어가지 않으니 다 같이 욕 한번 먹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한국 국회의원의 두꺼운 낯과 시커먼 속마음은 청나라 이종오의 책 <후흑학(厚黑學)>수준이다. 그래도 국회의원을 대우하는 국민의 넓은 가슴은 태평양을 닮았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