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닥치고 북한 나무심기

  탈북자들이 남한에 처음 도착해서 가장 놀라는 것은 어딜 가나 푸르른 숲이다. 대남공작 부서에서 상류 생활을 즐기다 탈북한 30대 후반의 남성이 들려준 ‘한국에 와서 놀란 10가지’에 산마다 울창한 나무가 앞순위에 꼽혔다. 도로를 잔뜩 메운 자동차일 법도 하지만 그건 잠깐이다. 자동차와는 달리 숲만들기는 수십 년이 걸려야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남한에 와서 가장 인상 깊은 두 가지를 꼽은 것에도 산림녹화가 들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대학입학시험 때 고등학교 선배들이 대학 정문 앞에서 후배들을 격려하는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실제로 한국은 온 국민이 100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고 가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독일·영국·뉴질랜드와 더불어 세계식량기구(FAO)가 선정한 세계 4대 산림녹화 성공국가로 뽑힌 것은 뿌듯해 할 만한 일이다.
                                                       

                                           <북한 함경북도 지역 민둥산 자료 사진>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산림황폐화가 가장 심각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오명까지 지녔다. 지난해 말 영국의 위기관리 전문기업 ‘메이플크로포트’가 발표한 ‘산림황폐화 지수’에서 북한이 전 세계 180여 나라 가운데 세 번째로 위중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시아 개발은행과 유엔 보고서는 북한의 삼림 비율이 1990년 68%에서 2010년 47%로 20년 만에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북한의 민둥산과 울창한 남한의 숲은 남북한의 현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남북한의 경계가 밤에는 불빛, 낮엔 숲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인공위성이 촬영한, 남북이 대조적인 한반도 야경 자료 사진>

 

 북한 산림황폐화의 심각성은 김정은 체제에서도 역점사업으로 추진되는 전 인민의 나무심기 독려가 방증한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직접 기념식수를 하며 산림녹화의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 역설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사설을 통해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은 올해에 온 나라를 수림화, 원림화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인 강성대국을 건설하자고 전 주민에게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은 곧 쏘아 올리는 ‘광명성 3호’ 로켓도 삼림자원 분포 등을 판정하기 위한 위성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하지만 북한 단독으로 삼림조성에 성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을 구제하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다. 1990년대 중반부터 반복되는 홍수와 산림 황폐화가 악순환처럼 맞물려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 정부당국자들도 북한 나무심기가 화급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오랜만에 그럴듯한 말을 한 것도 바로 북한 산림가꾸기다. 이대통령은 식목일을 맞아 북한에서 산림을 가꾸고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것을 우리 기업들에 권면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기업이 남미를 가느니 북한의 산림을 우거지게 하면 북한도 돕고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코앞에 닥친 총선과 민간인 사찰 폭풍 묻혀 메아리가 없지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긴요한 과제다.
                                                          

                       북한에 시급히 나무를 심어야 할 민둥산 면적이 서울시(605㎢)의 23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종화 교수 자료

 

 문제는 또다시 실천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9년 11월 국무회의 때도 정부부처에 똑같은 주문을 했다. 정부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북한 나무심기 계획을 세워 달라는 당부였다. 국민기업인 포스코가 남미까지 가서 나무를 심기보다 북한에 심어주는 것이 여러 가지 장점이 많다는 점을 조목조목 들면서 말이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후보 때도 이 계획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고건 위원장도 2010년 초 “북한 지역 나무심기로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을 해소하겠다”고 다짐했다.

 북한 나무심기는 장기적으로 통일비용을 줄이고, 단기적으로는 새로운 경협모델로 성공할 수 있는 개연성도 높다. 정치적인 문제와 분리해 인도적 차원에서도 시급히 재개해야 할 숙제다. 북한 나무심기는 올해 들어 유난히 강조하는 북측의 절박성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온갖 비리와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이 대통령은 이것 하나만 성공적으로 물꼬를 터도 대북정책의 실책을 다소나마 만회하는 치적을 남기는 셈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종화 교수가 미국항공우주국(NASA) 지구관측위성 테라와 아쿠아의 MODIS 센서

                                정보를 분석해 얻은 북한의 민둥산 분포도.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