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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전세계의 분노가 정당한 이유--"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


 ‘상위 1%가 다스리는 세계는 잘못 가고 있다. 99%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불평등을 종식해야 한다.’ 지난 주말 전 세계 82개 나라, 1500여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반(反)월가’ 시위와 구호를 보면서 ‘꼬리감는원숭이의 분노’가 문득 떠올랐다. 미국 에모리대 여키스영장류연구소에서 갈색 꼬리감는원숭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결과는 동물조차 같은 일을 하고 차별적인 보상을 받으면 불만을 나타내고 항의하는 평등과 정의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경제학적 숙제를 남겼다.
                                                                   

                                                                        <탐욕의 상징인 월가의 황소>

 연구원들은 원숭이들에게 돌을 돈이라고 생각하고 거래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 뒤 그 돌을 먹을 것과 바꾸어주는 실험을 했다. 다섯 마리의 꼬리감는원숭이들이 돌을 실험자에게 건넬 때마다 과자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훈련시켰다. 1차 훈련이 끝난 뒤 원숭이 암컷 두 마리를 한 방에 넣었다. 한 방에 들어간 원숭이1이 실험자에게 돌멩이 하나를 내밀면 실험자는 달콤한 즙이 흐르는 포도알을 건넸다. 그 모습을 본 원숭이2는 흥분했다. 돌멩이를 내밀면 자신도 맛있는 포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감으로 원숭이2가 돌멩이를 내밀면 실험자는 오이조각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러자 원숭이2는 똑같이 일하고 다른 사람은 거액의 월급을 받는데 나만 쥐꼬리 만 한 월급을 받을 때 나타나는 감정적 저주를 보였다. 원숭이1이 받은 달콤한 포도는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인 반면, 원숭이2는 비타민은 풍부할지 모르지만 뭔가 부족한 것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씁쓸한 기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두 마리 원숭이가 건네는 돌멩이의 가치를 실험자가 다르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는 것이다.

 원숭이2는 인간이 분노라고 부르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실험자가 확립한 통화체계를 거부한 셈이다. 실험자가 오이를 계속 건네면 어느 순간 원숭이2는 실험자에게 등을 돌리고 그 오이를 받지 않으려 했다. 실험자가 오이를 계속 건네면 어느 순간 원숭이2는 실험자에게 등을 돌리고, 모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굶어죽는 편을 택하겠다는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실험자가 경제 정의가 왜곡된 주문을 계속하자, 원숭이2는 돌멩이를 실험자에게 집어 던졌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실험대상 원숭이들이 더 나은 보상을 받은 파트너에 대해 싫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결코 파트너를 탓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 연구결과가 인간의 정의감과 평등의식은 사회적 산물이 아니라 유전되는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베를린에 있는 한 연구소의 연구결과도 흡사하게 흥미롭다. 12개 국가에서, 15개의 서로 다른 사회를 대상으로 100개가 넘는 경제학 실험을 했을 때다. 사는 대륙이 다르고 사회 형태가 모두 달랐음에도 누구는 오이를 받고 누군 포도를 받는 것과 같은 차별적 대우를 받았을 경우 결코 ‘스스로의 이익’과 ‘합리적 선택’에 따라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인간적 존엄성을 무시한다고 생각되는 거래는 모두 거부했다.

 문제는 오늘날의 경제학과 사회학 이론이 꼬리감는원숭이의 분노를 무시하는 데 있다. 경제학과 네오다위니즘 진화심리학은 ‘합리적 선택모델’을 떠받든다. 합리적 선택모델이란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보아 그 계산 결과에 따라 실리적 선택을 한다는 이론이다. <천재 자본주의 vs 야수 자본주의>(타임북스)의 저자인 미국 심리학자 하워드 블룸은 합리적 선택모델이 인간에게는 음식 자체 보다 자존심과 사회적 지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일갈한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오이를 듬뿍 받았다면 기뻐해야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부터 느끼는 게 인간이다. 블룸은 “인간보다 머리가 훨씬 더 작은 동물인 원숭이도 ‘부의 불균형적 분배 현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이러한 저항감이야말로 혁명의 핵심이 되는 감정”이라고 부연한다. 베를린 연구소의 조셉 하인리히 연구팀장은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동물)라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쓴 모든 경제학 교과서의 이론들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통박한다. 결론은 ‘인간의 이기적 성향에 근거해 고안된 이성적 선택모델은 그 어떤 사회에서도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월1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서 열린 반월가 지지시위> 

 그럼에도 국내의 일부 지식인과 언론은 월가 시위대가 1%의 부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인간성을 욕되게 하는 참을 수 없는 짓이라고 여기는 천박성을 내보인다. 미국 월가 시위대에 맞서 ‘우리는 53%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중산층이 온라인 사이트(the53.tumblr.com)를 개설했다는 소식에 반색하면서 말이다. 이들은 53% 목소리가 한국서도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여의도 금융가 시위를 숫제 ‘짝퉁 월가 시위’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무려 73%에 이른다는 최근 조사결과를 애써 무시한다.

 수십만 명이 참가한 이탈리아 로마 시위에는 ‘유일한 해법은 혁명뿐’이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속단할 수 없지만 일시적인 바람으로 끝나지 않아 1960대 후반 전 세계를 휩쓴 ‘68혁명’처럼 사회개혁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럽중앙은행 차기 총재로 내정된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중앙은행장도 “청년들에겐 분노할 권리가 있다”며 시위에 공감을 표시했을 정도다.

 지난 5월 스페인에서 불을 지핀 ‘분노한 사람들’과 한 달 가까이 된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이제 전 세계의 현안으로 번졌다. 분노의 바람이 두려운 1%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수백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 ‘최종병기 활’의 명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극복의 수단은 대안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분량을 늘려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