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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스핀 닥터 정치의 빛과 그림자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실화 영화 ‘더 퀸’(The Queen)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여론을 바꿔 놓는 ‘스핀 닥터’(Spin Doctor)의 탁월한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집권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블레어는 꼭두새벽에 이 소식을 보고받자마자 홍보전략 책임자 알러스테어 캠벨을 먼저 찾는다. 캠벨은 이미 일어나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블레어 총리의 대국민연설을 쓰기 시작한다. 다이애나비가 숨졌다는 뉴스가 나온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스핀닥터 알러스테어 캠벨>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국 왕실은 전통에 얽매여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비의 죽음에 침묵으로 일관해 국민들의 비통한 심정과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를 보다 못한 블레어 총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설득해 마음을 열고 텔레비전에서 애도사를 발표하도록 유도한다.
이때 캠벨은 여왕의 추도사를 미리 읽어보고 (어머니를 잃은 손자들을 걱정하는) ‘할머니로서’ 라는 말을 넣어 왕이 아닌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스핀닥터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덕분에 부정적인 왕실의 이미지가 일주일 사이에 확연히 바뀌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18년간 야당생활 끝에 집권한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은 스핀 닥터 전략으로 총선에서 이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레어는 집권기간 중에도 사실상 부총리 행세를 한 스핀 닥터 캠벨의 입맛대로 움직였다. 재미를 좀 본 블레어정부는 전임 존 메이저 보수당 총리 때보다 무려 4배나 많은 80여 명의 스핀 닥터를 운용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대표적인 스핀 닥터 수혜자로 손꼽힌다. 그의 곁에는 딕 모리스, 제임스 카빌 같은 홍보의 귀재가 붙어 성추문사건 위기조차 거뜬히 넘었다.
그 뒤 칼 로브의 보좌를 받은 조지 부시, 데이비드 액셀로드를 얻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스핀 닥터의 도움으로 집권하고 국정을 운영했다. 어느 덧 스핀 닥터는 신조어가 아닌 낯익은 보통명사로 지구촌 곳곳을 누비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홍보의 달인이라는 선의보다 사실을 왜곡하는 화장의 명수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훨씬 커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스핀닥터 데이비드 액셀로드>

 
빛이 강하면 그만큼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천하의 캠벨도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된 ‘이라크 보고서’를 조작한 의혹 때문에 사퇴해야 했다. 블레어 행정부의 스티븐 바이어스 교통부장관 특별보좌관이었던 조 모어도 스핀의 과용 사례에 걸려든다.
그는 미국에서 9·11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오늘이 나쁜 뉴스를 묻어버리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라는 요지의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잦은 철도 사고로 골치를 앓고 있던 교통부가 이때를 틈타 불리한 자료를 발표하면 대형사고 소식에 묻혀 거의 보도되지 않고 넘어갈 거라는 얄팍한 계산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앙심을 품고 있던 교통부 직원이 이를 언론에 알리는 바람에 된통 당하고 말았다. 블레어의 후임자인 고든 브라운 총리는 언론의 질타를 받았던 블레어식 스핀 닥터 정치와 단절하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오바마 행정부는 오사마 빈 라덴 사살과정을 각색한 전형적인 스핀 닥터식 언론플레이를 했다가 외려 역풍을 맞았다. 이명박 정부도 스핀 닥터의 과도한 윤색과 가공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다. 아랍 에미리트 연방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를 하면서 대통령이 화룡점정(畵龍點睛)한 것처럼 포장했지만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들고 나타났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대통령의 발언을 ‘조금 마사지한 것’이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그는 한국판 스핀닥터론을 들고 나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스핀닥터는 홍보 전략을 정교하게 짜서 대통령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연구하는 전문가이지만 우리는 다르다. 스핀닥터는 관전자일 뿐 아니라 게이머 역할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홍보 전략이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대통령을 대신해 말로 싸움꾼까지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주말 캠벨처럼 언론인 출신인 최구식 홍보기획본부장을 스핀 닥터로 쓰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부자·특권·웰빙 정당’ 딱지를 떼겠다는 의도라고 한다.
홍 대표는 원내대표 시절에도 정책 혼선을 막기 위해 의원들의 텔레비전 토론회 참석, 인터뷰 등을 스핀 닥터를 통해 조정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곧 흐지부지됐다. 당 지도부부터 현안과 정책을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혼란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스핀 닥터는 정치지도자들에게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진실을 호도하는 스핀 닥터들의 활동은 외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례가 숱하게 드러났다. 스핀 닥터는 정치 불신을 낳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공개적으로 스핀 닥터 정치를 선언한 것은 하수 중의 하수다. 시대가 변해 막후에서 스핀을 먹여도 알만한 국민들은 다 안다. 정치공학이 아닌 감동의 정치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게 정도다. “스핀은 제발 그만 좀!”이라는 목소리가 전 세계에서 들려오지 않는가.

스핀 닥터는 좋게 보면 ‘정치인 이미지 홍보전문가’로 번역되지만 ‘홍보기술자’나 ‘언론플레이 박사’쯤으로 부르는 게 적절할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이 실수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존재 가치를 더해 주는 일종의 정치 모사(謀士)인 셈이다.
스핀 닥터라는 표현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4년 10월21일자 뉴욕 타임스로 알려져 있다. 미국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후보와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이 끝난 직후 기자실에 스핀 닥터들이 몰려들어 언론플레이에 열을 올렸다는 기사에서였다. 원래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공에 스핀을 넣어서 던지는 커브볼 투수를 스핀 닥터로 부르기 시작한 데서 유래한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정적이었던 윌리엄 헤이그 전 보수당 당수는 "스핀으로 일어선 정권은 스핀으로 망한다"고 극언했는데 홋날 그의 예언은 맞아떨어진 셈이다. 헤이그의 비판은 본질(Substance)은 제쳐놓고 포장(Spin)만 요란하다는 게 요체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분량을 늘려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