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는 스스로 ‘팔마(八馬)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더없이 자긍심 높은 이름이다. 이곳에선 학교, 체육관, 거리, 회사 이름을 비롯해 ‘팔마’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심지어 산악회에도 팔마는 인기 있는 이름이다. 죽도봉공원엔 팔마탑이 서 있고, 승주군청 앞에는 아주 오래된 팔마비가 세워져 있다. 팔마는 청렴의 표상이다. 
                                               

 
 
 
여기에는 한 청백리에 얽힌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고려 충렬왕 때의 일이다. 이곳 목민관이었던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崔碩)이 비서랑이 되어 수도 개경으로 돌아갈 때 백성들과 향리들이 고을 관례에 따라 좋은 말 일곱 필을 선물로 주었다. 일종의 전별금이다.
최석은 일곱 필이나 되는 말이 필요 없다고 사양하다 마지못해 받아 이삿짐을 나눠 싣고 왔다. 개경에 도착한 뒤 최석은 이 말을 모두 돌려보냈다. 백성들은 일곱 필이었던 말이 여덟 필로 불어나 있어 어리둥절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편지 한 통이 있었다. 개경으로 올라오는 길에 낳은 망아지를 함께 돌려보낸다는 사연이 쓰여 있었다.
부사 시절에도 청렴결백하던 최석이었다. 감읍한 백성들은 그를 칭송하며 송덕비를 세우고 팔마비라고 불렀다. 이 비석은 고을 백성이 스스로 세워 준 우리나라 최초의 선정비(善政碑)라는 게 정설로 전해진다. 이 일을 계기로 말을 전별 선물로 주는 폐습이 없어진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청백리의 고장 순천의 명예가 요즘 들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잇달아 발생했다. 지방선거가 도입된 이후 1, 2, 3기 민선시장이 연속해서 뇌물수수 혐의로 감옥에 가는 오욕을 안았다.
3기 조충훈 시장은 선거에 앞서 공개적으로 청렴서약서에 서명했다. 취임 이후에도 청렴과 ‘팔마 정신’을 유난히 역설한 그였기에 시민들의 공분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것도 그가 재력가였기에 배신감은 더했다.
올 들어 이곳에서 4·27 보궐선거가 치러진 것도 서갑원 전 국회의원이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낙마한 탓이다. 서 전 의원은 최근 문제의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조사까지 받았다. 부산저축은행사건에 연루된 순천사람은 서 전 의원뿐만 아니다. 이곳의 한 방송기자가 구속되고, 순천시 고문변호사도 대검 중수부의 조사를 받았다.
그에 앞서 순천시 공무원 2명이 공금을 횡령해 기소됐다. 최석의 청백리정신을 이어받아야할 후임자들이 부정부패 공직자로 전락한 것은 비극적인 아이러니다. 그러자 시민단체인 순천 YMCA가 며칠 전 팔마의 고장에서 치욕스럽고 경악할만한 일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고 개탄하는 성명서를 이례적으로 냈다.

                                                    
공직자 필독서인 <목민심서>를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집필한 곳이 순천에서 가까운 강진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상징적 의미가 크다. 널리 알려진 대로 다산은 청렴을 공직자의 최고 덕목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요 모든 선의 근원이요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 없다.”


순천의 역설은 상징적일 뿐 대한민국 공직자와 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척결은 미룰 수 없는 현안이 됐다. 국제투명성기구가 해마다 발표하는 청렴성 평가에서 한국은 2년 연속 39위에 그쳤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에 비춰 부끄러운 현실이 된 건 오래전 일이지만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청렴서약이 공공기관마다 봇물을 이루고 있다. 부정부패를 추방하기 위한 아이디어만 보면 금방이라도 온 나라가 깨끗한 공직자로 가득 찰 것처럼 보인다.
황희 정승 같은 청백리 묘역 단체방문, ‘깨끗한 금자씨’ ‘너나 받으세요’ 같은 청렴포스터 전시회, ‘현대판 목민심서’라는 부제가 붙은 청렴수첩과 청렴 명함, 1직원 1청렴 명찰 패용식, 부패 풍자극 경연대회, 컴퓨터를 켜면 화면에 청렴 서약을 적은 팝업창이 가장 먼저 뜨도록 하는 장치, 청렴서약서 액자 걸기, 청렴신조를 담은 타임캡슐, ‘청렴나무’에 이름표 달기 퍼포먼스... 눈길을 사로잡는 것만 해도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더 눈물겨운 것은 윤동주의 시 ‘참회록’과 ‘서시’를 패러디한 서약식이다. ‘나는 밤이면 밤마다 나의 청렴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겠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제 웬만한 공공기관은 청렴서약제도가 의무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구호만으로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부정부패다. 관건은 서약의 진정성이다. 단속해야할 부서마저도 인력난과 정보부재를 이유로 미온적이면 있으나마나다. 비리의 온상이 되는 각종 불합리한 규제나 간섭을 현저하게 줄이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의 하나다.
강력하고 실천 가능한 내부고발제 도입도 절실하다. 고발자를 배신자로 취급하는 사회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서약이나 제도적 장치 강화에 앞서야할 것은 공직자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공직자 모두가 ‘팔마의 정신’과 <목민심서>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소득과 청렴지수는 함께 간다. 청렴선진국이 진짜 선진국을 만든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선진국의 청렴지수(10점 만점에 7점 이상)는 한결같이 우리보다 2점정도 높다. 부정부패 척결을 통해 한국의 국가청렴도 지수를 최소한 20위 안에 들게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로선 국가의 청렴도를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고선 국정지표로 내세운 선진화를 이룰 묘법이 없다.
 

※※※ 최석의 팔마비 이후 조선시대에는 부정부패한 지방수령이 자신의 청렴을 위장하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스스로 송덕비를 세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송덕비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일화가 전해오는 것은 과천현감의 사례다. 한 과천현감이 영전해 한양으로 떠나게 됐다. 관례대로 아전들이 송덕비를 세우겠다며 비문을 어떻게 할지 물었다. 이 현감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며 일임했다.
아전들은 여우고개(남태령)에 송덕비를 세우고 현감에게 제막식을 하고 가시라고 아뢰었다. 현감이 잠시 행렬을 멈추고 포장을 벗기자 비문에는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今日送此盜)”고 쓰여 있었다. 현감이 껄껄 웃고나서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 “내일 다른 도적놈이 올 터인데(明日來他賊)” 현감이 떠나자 아전이 또 한 줄을 보태 썼다. “도둑놈들만 끝없이 오는구나(此盜來不盡)” 한참 뒤 지나가던 행인이 이를 보고 한 줄을 더 보탰다. “세상에 모두 도둑놈뿐이구나(擧世皆爲盜)”

실화인지, 지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만한 풍자도 찾아보기 어려울 듯하다. 조선시대 지방 수령 가운데 과천현감은 한양이 가깝고, 오가는 고관을 접촉하기 쉬우며, 세금징수가 많기 때문에 재물을 모아 뇌물을 상납해 조정의 권좌로 영전하는 자리였다. 과천 현감이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가게 되면 그의 공을 찬양하기 위해 송덕비를 세워 주었다고 한다. 당시 검은 돈을 벌기에 가장 좋은 벼슬로, 감사는 평안감사, 목사는 의주목사, 현감은 과천현감을 쳤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분량을 늘려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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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