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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 ‘집’

                                                                           


어디 사세요?-부동산에 저당잡힌 우리 시대 집 이야기…경향신문 특별취재팀 | 사계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숫가 오두막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로 지은 집의 전형이다. 그의 집짓기 명세서를 보면 건축비가 불과 28달러 12.5센트밖에 들지 않았다. 당시 인근 하버드대 1년 기숙사비가 30달러였다니 단박에 알 만하다. 14㎡(약 4.2평)의 오두막에는 나무 침대와 의자, 벽난로, 창가의 책상이 전부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 같은 풍경화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집이 있었기에 화가 밀레가 탄생했을지 모릅니다”라는 카피가 흐른다. “집이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말로 화룡점정한다. 국내의 한 고급 아파트 광고다. 또 다른 고급 아파트의 광고 카피는 한층 노골적인 명품 브랜드 전략을 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집은 이 광고 카피처럼 신분의 척도다. ‘좋은 집이란 육체와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작가 조정래의 집에 대한 지론 따위와는 그리 상관없는 듯하다. 더구나 혼자 1083채를 소유한 부동산 갑부와 2년에 한번씩 이삿짐을 싸야 하는 무주택자에게 집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쓴 <어디 사세요?>는 제목만 봐도 소로의 오두막집과 광고에 나오는 아파트를 비교, 연상하게 된다. 지은이들은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이 마치 대학 배치표에서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가늠하듯 사회경제적 지위를 함축하는 ‘현대판 호패’인 양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고 개탄한다. 집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인 간판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 이후 한국의 집에 관해 재조명한 책이지만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생생한 현장감 덕분에 사람 냄새가 짙게 배어나온다. 그러면서도 잘 짜여진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이 책의 토대가 된 연재 기획기사에 대한 촌철살인의 객관적 평가가 한마디로 대변해 준다 “특별하지 않은 소재를 특별한 깊이와 넓이로 다뤘다.” 2010년 5월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제273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부문 수상 심사평이다.
 책에는 집의 사회학·정치학·경제학이 풍성하게, 그것도 골고루 담겼다. 우선 사회적 측면을 보자. 당대의 주택 자산 격차는 후대까지 연결되어 빈부 격차의 대물림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곧바로 입증해 주고 있다. 주택가격에 따른 빈부격차가 학력격차로 이어진다는 게 첫 번째 사례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집의 평당 가격이 가장 비싼 강남구의 경우 영어 1~2등급 비율이 27.9%로 가장 높았고 그 반대인 중랑구는 같은 등급이 6.5%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둘째는 치안의 양극화다. 임대주택보다 자가소유 주택에서 범죄발생비율이 낮게 나타난다. 셋째, 건강의 차등화다. 무엇보다 병원이 부유한 동네에 훨씬 많다. 서울의 경우 강남구에 전체의 15%가 분포돼 있을 정도다. 집값의 무게가 출산율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실제 조사 결과도 보여준다.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이 서울과 경기도의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정치권과 학계의 가설도 현장 취재로 확인해 준다.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집 가진 사람, 다주택자, 아파트 거주자가 많고 투표율도 높게 나타났다. 서울 전체를 봐도 아파트가 많은 지역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은 현상은 뚜렷했다. 이른바 ‘부동산 계급투표’다. 소득이 늘어나지 않았음에도 주거형태가 바뀌면서 정치의식이 바뀌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라는 전문가의 분석도 곁들여졌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송파구 잠실 7동과 가장 낮은 강남구 논현 1동의 특이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따라잡기 어려운 집값의 경제학은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다. 세계 2위의 집값 상승률,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 임대료에 허덕이는 오늘의 한국인은 2010년 현재 평균적으로 서울에서 집 한 채를 마련하려면 약 14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소득을 꼬박 모아야 한다. 2010년 8월 현재 서울 강남구에 집을 장만하려면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5.9년어치를 모아야 한다. 유엔 산하기관인 인간정주위원회의 권고치를 서너 배 웃돌고 있다.
 세입자와 주택 보유자를 불문하고 연간 읍·면·동의 경계를 넘어 이사하는 비율인 17.8%라는 숫자는 4.3%인 일본의 네 배에 달한다. 속칭 ‘88만원 세대’는 고시촌 쪽방으로 몰리고, 저소득층 집단인 임대 아파트 주민은 기피대상이 되었다. 재개발지역에서는 원주민들을 세입자로 내쫓고 투기꾼과 건설사 배만 불린 주택 개발정책과 분양제도는 전두환 정권 이래 모든 정권이 그랬다. 광고주인 건설업자 눈치보기로 말미암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언론의 왜곡 보도 실상도 예외 없이 꼬집는다.
 이 책은 단순히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경험적 사례를 통해 한국 실정에 맞는 주택정책을 제안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과 세심한 소통을 거쳐 개발을 추진하는 독일, 거품 붕괴 이후 집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보유에서 임대로’ 크게 바뀐 일본을 실감나게 소개한다.
                                                   

 지은이들은 소유가 아니라 임대주택도 괜찮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우리도 공공 임대주택 비율을 늘려 집값과 임대료의 지나친 상승을 막고 서민 주거를 안정시켜야할 때가 됐다는 걸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촉구한다. 주택 금융도 20년 동안 원리금을 조금씩 갚아나가는 외국식 모기지 방식으로 전환돼야 하고 도시개발도 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국 사회의 큰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들의 소망대로라면 ‘평범한 사람들이 집 문제로 마음고생 덜 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될 게 틀림없다. 1만5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