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03-27 
 
 언어철학의 거장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조차도 뇌물을 준 사실이 있다면 놀랄지 모른다. 독일이 1937년 비트겐슈타인의 조국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을때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있었다. 당시 빈에 살고 있던 그의 여동생 2명이 나치의 「종족법」으로 재판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다급해진 그는 독일로 달려가 나치관리와 협상을 벌였다. 곡절 끝에 그는 독일 중앙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여동생들을 다치지 않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스위스은행에 예치된 돈을 찾아 독일관리가 일러준 계좌로 송금, 여동생들이 무사하게 됐음은 물론이다.「공직자와의 뇌물거래는 필요악」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음직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영국의 대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비트겐슈타인과는 반대의 경우다. 뇌물을 받은 죄로 평생동안 쌓아 올린 권위와 명성을 하루 아침에 잃었다. 우리에겐 이름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언으로 더 잘 알려진 그가 거액의 뇌물을 받아 먹었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도 「돈이 힘이다」라는 걸 절감해서 일까. 「추상법관」(秋霜法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청렴하고 정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대법관시절 자기 연봉의 20배에 달하는 뇌물을 꿀꺽 삼켰다.
 지난 25일부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일본 정계의 뇌물수수사건인 「오렌지 스캔들」은 한보사건과 점점 닮아가고 있어 점입가경이다. 엄격히 말해 오렌지 스캔들이 다소 먼저 일어나 한보사건이 이를 뒤쫓고 있는 형국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오렌지 공제조합의 부도가 거센 파문의 발단이 된 점이 우선 흡사하다. 일본의회에서 국정조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구치소에 수감중인 한 정치인 피의자가 폭로한 연루자 명단에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등 전직 총리 5명을 포함해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두루 망라돼 있어 파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관련자들이 하나같이 『한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다』 『왜 내 이름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낸 것 역시 한보사건 연루자들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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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