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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 칼럼> 犬公과 국회의원

1998-08-05
유권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 때론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있는 조그만 읍인 「수놀」의 주민들은 지난 83년 견공(犬公)을 읍장으로 뽑았다. 사람 읍장에 오죽 넌덜머리가 났으면 그랬을까. 요즘 우리 정치인들을 보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자신을 위해(危害)하지 않는 한 결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개의 품성에서 암시를 얻은 유권자들이 1회성 시위 정도로 시작했다가 무려 여섯차례나 연임시켰다.

읍장으로 선출된 보스코 보스 라모스란 이름의 이 사냥개가 유권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없이 충직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4년 전인 지난 94년 천수(天壽)를 다할 때까지 11년간이나 자신의 임무에 일로매진(一路邁進)했다. 비록 인구가 1,000여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지역의 장이었지만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은 견공 읍장은 TV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국제부장

격노한 유권자가 동물을 대표로 뽑은 실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59년 10월4일에는 브라질에서 코뿔소 1마리가 무려 5만표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상파울루 시의회 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다. 한낱 해외토픽 같은 얘기로 돌리기엔 그곳 주민들이 너무나 진지했다.

우리 유권자들은 심하게는 「식물국회」니 「뇌사국회」니 타매(唾罵)하면서도 여전히 차가운 이성보다 감성만 앞세우는 2중성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게 한계다. 여름잠을 자던 국회가 66일만에 시답잖은 국회의장을 뽑느라 진통을 치렀을 뿐 유권자의 뻥 뚫린 가슴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싸움박질만 하고 있는데도 한번쯤 분통을 터트리거나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며 냉소하는 것으로 그만이다. 그럴수록 주인인 국민의 뜻은 견공만큼도 헤아리러들지 않는 국회의원들만 은근히 즐길 뿐인 데도 말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이제 말로만 개혁하라고 다그쳐 봐야 어디 개가 짖느냐는 투가 된지 오래다. 타박하는 강도가 좀 거세지면 시늉만 하다가 마는 꼴도 진절머리가 나도록 잦다. 여기에다 대고 자율적인 정치개혁을 주문하는 자체가 소극(笑劇)이다.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제발 월급(세비)값이나 해달라고 애원조로 사정해야 할 판이다.

다만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 불기 시작해 후텁지근한 정치 무더위를 식혀줄 실낱같은 희망으로 바뀌지 않을까 일단 기대를 걸어보게 한다. 마침내 유권자들의 의분(義憤)이 극단적으로 분출하려는 조짐이 엿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이 일하지 않은 기간의 세비를 가압류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아 국민이 본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단체가 지금에야 등장한 것은 아쉬움이 있지만 때는 늦지 않다.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점수까지 매겨 발표하겠다는 본격적인 시민감시단체가 나타난 것은 한걸음 더 나간 것으로 평가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실직자들이 중심이 됐다니 전시용은 아닐 듯하다. 참여민주주의와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의 작은 싹을 우리는 소중하게 키워가야 할 때다.

하지만 그것으로 먹혀들 우리네 국회의원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막상 선거때만 되면 의정활동 성적은 표와 무관하다는 것을 국회의원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서글픈 것은 바로 이런 우리 유권자들이다. 막 움튼 시민운동의 싹이 반갑기 그지없으나 여기에 그쳐서는 수확은 기대난일 수밖에 없다.

심한 얘기일지 모르나 개만도 못한 국민의 대표를 혼내주기 위해서는 우리도 견공을 국회로 진출시키는 것과 흡사한 극단의 조치까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우리 유권자가 선거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잊지 않아야 할 사실은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엉성한 기억력을 먹고 산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