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에서

다른 듯 닮은, 불편한 성장에너지 ‘라이벌’

2009.08.14 17:22  

라이벌은 ‘강물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라틴어 ‘리발리스’(rivalis)란 말에서 유래했다. 강물이 풍족하면 함께 나눠 쓰는 이웃이자 친구가 되지만, 부족하면 싸움을 벌이는 라이벌이 된다. 강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은 소유권을 정할 수 없는 강물을 놓고 늘 같이 쓰며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이벌은 적과 다르다. 적은 타도와 섬멸의 대상이지만 라이벌은 대립하면서도 때로는 협력하는 공존공생의 대상이다. 라이벌은 불편한 존재이지만 성장 에너지이기도 하다. 라이벌이 없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갈망이 없다는 것과 동의어다.

한국 현대사에서 ‘세기의 라이벌’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을 보면 20세기 세계 미술계를 양분했던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의 관계와 많이도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사뭇 대조적인 민주화의 쌍두마차 YS와 DJ가 불꽃 튀는 경쟁자이면서 때로는 협력하며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쓴 지도자였듯이 마티스와 피카소 역시 서로 닮은 듯 다르게 치열한 경쟁을 벌인 거장들이어서다. 영남의 거두인 YS는 명문학교를 거쳐 전형적인 엘리트의 길을 걸은 반면 호남의 거목인 DJ는 상고를 졸업한 서민형 정치인이다. 성격적으로도 좀더 격정적인 YS와 진중한 DJ는 정치 스타일도 판이하다.

야수파로 불리는 마티스와 입체파로 일컬어지는 피카소는 이질적인 예술적 사조로 같은 시대를 풍미한 거장이다. 미국의 저명한 미술사학자 잭 플램이 <세기의 우정과 경쟁-마티스와 피카소>(예경)에서 해부해 놓은 두 거장의 관계를 보노라면 대립쌍 같다. 색채와 형태에서부터 부르주아적 삶과 보헤미안적 삶, 낮 개미 체질과 밤 올빼미 체질, 냉정과 열정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대비점은 끝 간 데를 모를 정도다. 절제된 언행의 ‘점잖은 교수님’ 같은 마티스와 ‘자유분방한 어릿광대’라고 자칭한 피카소. 각각 DJ, YS에 대입해도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가. 마티스가 자제심이 강하고 신중한 태도로 유명한 반면 피카소는 극적인 기질과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이름이 높다. 마티스의 작품이 단순한 형상이지만 심원하고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 데 비해 피카소의 그림은 직접적이고 서사적이다.

서로 유일한 경쟁자로 여긴 마티스와 피카소의 작품 세계는 완전히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꼴이다. 피카소는 특히 마티스의 작품 요소를 눈여겨봐 자신만의 화법으로 변용하길 즐겼다. 마티스와 피카소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 견제하기 시작했지만 마치 서로의 페이스를 유지해 주는 마라토너 같았다고 플램은 증언한다. 두 거장의 작품들 간에 상호침투 흔적이 그만큼 뚜렷하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아프리카에 매료됐던 마티스가 거리 골동품상에서 구한 콩고 조각을 들고 후원자 스타인가(家)를 방문하자 때마침 거길 와 있던 피카소가 아프리카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다.

“딱 한 사람만이 나를 평할 권리가 있으니 그건 피카소이다”라고 말했던 마티스나 “모든 것들을 두루 생각해 보니 오직 마티스밖에 없다”는 피카소의 말은 앙숙인 두 사람을 엿보게 한다. DJ가 야당 총재 시절 “내가 죽었을 때 제일 슬피 울 사람이 김영삼 총재이고, 김영삼 총재가 돌아가실 때 가장 슬피 울 사람이 이 김대중”이라고 했던 말을 연상한다.

이번주 초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병마와 투쟁을 벌이고 있는 DJ의 병실을 찾은 YS가 오랜 반목관계를 청산하는 화해의 말을 남겨 뒷담화가 무성하다. 아쉬운 것은 서로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다. 하긴 피카소는 마티스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부고 전화조차 외면해버렸다고 한다. 영국 작가 오웬 펠담은 “가치 있는 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화해하면 더 가치가 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