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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삶 속에 들어온 자연, 그 청신한 은유

2009.08.28 17:29  

정제되고 간결한 글이지만 격조 있고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어 옷깃을 여미고 곱씹게 만든다. 때론 그윽한 수묵담채화를 떠올리는 영상이 문장 속에 농축돼 있다. 더러운 곳에 처하더라도 항상 깨끗한 마음을 지닌다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경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의 정취, 세심한 관찰력에서 현현하는 사물의 참 뜻, 개인의 기호와 독서 취미에 이르기까지 주제와 소재의 폭은 실로 다양하다. 도덕적 설교나 계몽의 의지 없이 한가로운 풍경과 즐거운 만필(漫筆)이 곁들여져 대중과도 친숙할지언정 거리감이 없다. 청언(淸言), 잠언(箴言), 경언(警言), 철언(哲言), 운언(韻言)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 육소형(陸紹珩)의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 여곤(呂坤)의 <신음어(呻吟語)>, 조선 후기의 문인 이덕무(李德懋)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같은 청언소품집((淸言小品集)의 공통점이다. 조선 정조가 정통 고문을 어지럽히는 잡문이라 해서 문체반정(文體反正)을 감행한 바로 그 문제의 소품문들이다.

청언소품집 가운데 린위탕(林語堂)이 최고의 찬사를 바친 책이 청조말 문장가 장조(張潮)의 <유몽영(幽夢影)>이다. 린위탕은 <유몽영>에 매료돼 유명한 <생활의 발견>에 이렇게 썼다. “자연은 인생 전체 속으로 들어온다. 자연은 때로는 소리일 수도 있고 색깔이기도 하며 모양이기도 하고 감정이기도 하다. 또 분위기일 수도 있다. 영민한 생활 예술가인 인간은 자연의 적당한 감정을 골라 그것을 자신의 기분으로 조화시키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중국 대부분의 시인 문인의 태도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표현은 장조의 <유몽영>속의 에피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저서는 문학적 격언을 모아놓은 책으로 이런 유의 격언집은 중국에 많이 있으나 장조에 비견되는 것은 결코 없다.”

‘희미한 꿈 그림자’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유몽영>은 도가풍의 은일과 여유가 물씬 풍겨난다. 철인, 달인, 기인, 고인(高人), 운인(韻人) 등 여러 얼굴로 비치는 장조의 시적 언어구사와 차원 높은 은유가 빼어나다.

그 <유몽영>과 역시 청조말의 주석수(朱錫綏)가 쓴 <유몽속영((幽夢續影)>을 함께 묶어 정민 한양대 교수가가 맛깔스럽게 옮기고 평설을 곁들인 <내가 사랑하는 삶>(태학사)은 어디를 들춰봐도 지은이의 청신한 인격에서 나오는 아취와 촌철살인이 번뜩인다. <유몽영>은 서양식으로 보자자면 어떤 글은 에피그램이지만 또 다른 글은 아포리즘에 맞는 것도 있다. 프랑스적 인생탐구서와 비교되지만 일종의 처세서에 가까운 <채근담>과도 차별성이 우러나온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몇 대목만 맛보자. “매화는 사람을 고상하게 하고, 난초는 사람을 그윽하게 하며, 국화는 사람을 소박하게 하고, 연꽃은 사람을 담백하게 한다. 봄 해당화는 사람을 요염하게 하고, 모란은 사람을 호방하게 하며, 파초와 대나무는 사람을 운치 있게 하고, 가을 해당화는 사람을 어여쁘게 한다. 소나무는 사람을 빼어나게 하고, 오동은 사람을 해맑게 하며, 버들은 사람에게 느낌을 갖게끔 한다.” “자기 단속은 가을기운을 띠어야 마땅하고. 처세는 봄기운을 띠어야 마땅하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문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구경하는 것과 같다. 모두 살아온 경력의 얕고 깊음에 따라 얻는 바도 얕고 깊게 될 뿐이다.”

지은이의 문장은 여백을 두고 읽어야 제 맛이 난다. 천천히 읽어야 분석이 되고, 게으르게 읽어야 상상이 되며, 느긋하게 읽어야 비판할 거리가 보이는 법이라고 설파한 ‘독서의 달인’ 호모 부커스의 자세가 이 책에 썩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