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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김학순 칼럼] 강과 바다의 ‘만리장성’

입력 : 2006-08-29 18:49:35

일행 가운데 누군가가 중얼거리듯 한마디를 던졌다. “중국에는 지율스님이 안 계신가 보네.” 지난주 극히 짧은 답사기간 동안 양쯔강 중류의 3개 협곡 물줄기를 틀어막은 싼샤(三峽)댐을 통과할 때였다. 중국인들이 ‘새 만리장성’(新長城)이란 별명을 붙인 대역사(大役事)에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한국의 환경운동이 불현듯 떠올랐던 모양이다.

듣던 대로 수려무비한 풍광을 자랑하는 120㎞ 길이의 협곡을 ‘괴물’처럼 막아선 싼샤댐은 다목적이긴 하지만 개발지상주의를 고스란히 웅변하는 오늘의 중국을 상징하고 있었다. 만리장성 이래 최대 역사라는 싼샤댐은 사실상 서부대개발의 출발선이기도 하다. 지난 5월20일 완공된 싼샤댐은 중국 경제성장의 최대 기념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수억 명에 달하는 양쯔강 유역 주민들에게 닥칠지도 모를 환경 대재앙이나 한반도에 미칠 부정적 영향 같은 것은 일단 염두에서 벗어나 있는 처량한 신세다.

만리장성 축성 이래 최대 ‘공정(工程)’은 그곳에만 있지 않았다. 지난해 12월10일 개통된 둥하이(東海)대교도 중국의 힘을 현시하고 남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양쯔강 하구의 최대 도시 상하이 앞바다에서 32㎞나 떨어진 섬에 건설된 양산(洋山)신항 컨테이너 부두와 연결하는 해상대교 둥하이대교는 ‘바다의 만리장성’으로 일컬어진다. 실제로 바다 위의 왕복 6차선 도로를 따라 달리는 기분은 감탄만으로 점철되지 않았다. 부러움과 걱정이 혼란스럽게 교직되고 있었다.

-‘중화민족의 부흥’ 야심찬 꿈-

둥하이대교는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에서 경이롭게 다가오는 미국 대서양 연안의 ‘체사피크 베이 브리지’를 연상케 한다. 둥하이대교가 장엄함에서는 자동차를 몰고 직접 달려본 37㎞ 길이의 체사피크 다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느낌이다. 거기서 착상했는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먼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담대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상하이 인민대표대회 도중에 제안돼 실천에 옮겨진 게 양산신항 건설프로젝트라고 안내자는 경과를 거슬러 설명한다. 게다가 2015년까지 둥하이대교와 나란히 철도와 도로를 겸한 제2둥하이대교가 추가로 지어진다고 했다. 대양산 섬과 소양산 섬을 이어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 항구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꿈도 동시에 영글어가고 있다.

양산신항은 문을 연 지 불과 8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쉴새없이 수출컨테이너를 실어나르는 배와 크레인으로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동북아 물류중심 항만으로 발돋움시키겠다는 희망찬 프로젝트로 양산항과 비슷한 시기인 올 1월 개항한 부산신항의 상반기 물동량은 양산항의 4%에도 미치지 못한단다.

강과 바다의 혁명이 중국 땅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블랙홀처럼 느껴진 것은 기자만이 아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는 동방명주(東方明珠) 타워에서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황푸(黃浦)강을 내려다봐도 놀라움은 계속됐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선박 가운데 절반 정도가 모래를 싣고 있었다. 건설 현장으로 가는 모래운반선인 것이다.

문득 2002년 11월의 중국 공산당 제16차 당대회가 뇌리를 스쳐간다. 당시 보고서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어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華民族偉大復興)이었다. 이것으로 시작해 이것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로 9차례나 언급됐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은 역사와 시대가 우리 당에 부여한 엄중한 사명이다.” 무엇보다 16차 당대회 보고의 결어로서 사뭇 돋보이는 색깔로 ‘중화민족위대부흥’이란 글씨를 크게 써붙여 놓았던 사진이 깊이 각인됐던 기억이 새롭다.

-경제력 세계12위로 밀린 한국-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접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민주개혁 자성론이 영상에 겹쳐졌다. “지난 10년 동안 정권을 창출하고 재집권한 민주개혁세력이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뤄냈을지 모르겠으나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무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역사의 조롱거리가 될 것 같다.”

마침 어제 신문에는 우리나라 경제력이 브라질에 밀려 세계 12위로 다시 한 계단 떨어졌다는 기사가 시선을 붙잡았다. 경제의 총량이 반드시 복지지수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기분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지도자의 리더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미래예측 능력이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