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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 공감의 시대--경쟁의 시대 넘어 ‘공감’의 시대로

2010.10.15 21:26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민음사

ㆍ부의 집중과 적자생존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에 종언을 고하고
ㆍ오픈 소스와 협력이 주도하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 선언
ㆍ인류사 전반을 섭렵하며 거시적 해법 제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과정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여론조사 과정에서 색다른 질문 하나가 추가됐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대통령 후보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전통적인 선택지를 놔두고 '공감(empathy)'이라고 대답했다. 놀라운 것은 '공감'을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한 여론에 별다른 반응을 보인 정치학자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공감'이란 문제가 제기된 것은 지난 50년 동안 세계적으로 가치관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반영해 주는 현상인데도 말이다.
'공감'을 자신의 정치철학 핵심으로 삼은 것은 바로 버락 오바마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도 대외 정책에서부터 대법관 선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공감'이란 말을 앞세운다. 그가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강조한 한마디는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다. "나는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지난해 4월 '뉴욕 타임스'는 미국 교실에서 일어나는 공감혁명을 1면 기사로 다뤘다. 이 기사는 공감을 주제로 하는 워크숍과 교과 과정이 실시되고 있는 18개 주의 실태를 전하면서 이런 선구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초기 평가가 매우 고무적이라고 소개했다. 공감 개발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육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교육자들은 공감 능력을 개발할 때 학업성취도도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처럼 '공감'은 정치적 집회나 전문 단체,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될 정도로 친숙한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신작 <공감의 시대>(원제 The Empathic Civilization)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공감' 개념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유러피언 드림> <소유의 종말>의 저자인 리프킨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문명이 끝나고 협력과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다.

 과학기술의 새로운 조류와 그로 인한 세계 경제·사회·환경의 변화를 점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온 제러미 리프킨은 세계가 공감과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 AFP연합뉴스


 여성, 동성연애자, 장애인, 흑인 등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고, 타 민족, 타 인종에 대해서도 서로 인정하는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는 것은 공감의 문명으로 전환하는 방증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지은이는 이제 인간적 공감이 인류를 넘어 다른 생물에게까지 확장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애완동물을 동료로 여기는 것은 물론 다른 생물을 벗 삼고 자연에 대해 깊은 친화력을 갖게 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미국 가정의 69%가 개나 고양이를 사람들이 자는 침대에서 재운다는 최근 조사결과만 봐도 그렇다.
 세계경제체제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더불어 분산 자본주의가 인도하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석유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부의 집중과 적자생존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이 종언을 고하고, 오픈 소스와 협력이 주도하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대표적인 실례로 오픈소스 컴퓨터 운영체제인 리눅스와 무료 오픈소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들었다.
고대 신화시대의 구두문화, 농경사회의 문자문화에 이어 인쇄기술이 초래한 1차 산업혁명, 전기통신기술이 촉발한 2차 산업혁명, 21세기 분산 네트워크 혁명과 에너지 제도 혁신이 이끄는 분산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의식변화와 경제·사회·정치에 3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파급효과를 예언하고 있다.
공감 의식이 갑자기 확대되는 현상은 지구 곳곳을 황무지로 만들고 많은 인류를 더욱 가난에 빠뜨린 엔트로피 흐름의 증가를 등에 업고 나타난 결과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엔트로피 총량은 계속 증가한다'는 열역학 법칙에 따라 사용가능한 에너지의 손실을 엔트로피라고 한다.
저자는 최근 생물학계의 연구를 바탕으로 문명의 명멸 원인을 공감의 물결과 엔트로피의 상호관계에서 찾는다. '공감 뉴런'이라는 별칭이 뒤따르는 '거울신경세포' 이론이 그것이다.
저자는 공감의 확장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이며, 범위를 넓혀가는 공감의 연대감은 수많은 사람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어준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전 세계적 경제 위기도 20세기의 지정학적 권력투쟁에서 21세기에는 '생물권 정치'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분산에너지 경제체제가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식지가 생태계 안에서 기능하듯, 통치 제도도 다른 통치 제도나 전체 통치 제도로 통합되는 관계의 협력적 네트워크 안에서 생물권과 마찬가지로 상호의존적이고 호혜적으로 작동한다는 게 생물권 정치론이다.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공감 본능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모처럼의 분위기도 흐지부지되어 버릴 공산이 크고, 심지어 조롱이나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도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그의 견해가 희망사항이 혼재돼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읽었던 <유러피언 드림>을 넘어서지만 속편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유러피언 드림>에서부터 '공감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시사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저작들 가운데 <바이오테크 시대>가 생명과학, <노동의 종말>이 첨단기술의 일자리 박탈 문제, <소유의 종말>이 접속권(Access) 개념, <수소 혁명>이 석유시대의 종말 등 단일 카테고리를 다룬 역작이었다면 <공감의 시대>는 인류사 전반을 섭렵하며 거시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84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이경남 옮김. 3만3000원 김학순 대기자 hs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