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9-18 17:44:08수정 : 2009-09-18 17:44:09

ㆍ바벨탑·이집트 피라미드·베니스 팔라초…
ㆍ문화유적 통해 인간의 수직속성을 읽다

계단, 문명을 오르다(전 2권)임석재 | 휴머니스트

일과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마주치는 계단의 함의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가히 종교적 상징성, 정치적 기념비성, 사회적 공공성, 경제적 욕망, 심리적 섬세함, 생리적 육체성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둘러싼 개인적, 집단적, 정신적, 육체적 문명 작용의 집합체이다. 계단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오름이다. 계단은 인간의 수직 욕망을 자극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는다. 계단은 정치권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며, 하늘에 이르는 종교적 길이다. 계단은 인생살이의 비유에도 곧잘 등장한다. 에드워드 멘델슨은 <인생의 일곱 계단>이란 소설집에서 탄생, 어린 시절, 성장, 결혼, 사랑, 부모, 미래의 7단계를 그렸다. 계단의 예술적인 곡선은 심지어 은밀한 시각 요소가 가미돼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서양 문명의 뼈대를 이루는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하늘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인간의 욕심으로 짓는 수직 구조물은 경계의 대상이며, 특히 이교도의 수직 구조물은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사진 위 - 피터 브뤼헐 1세의 ‘바벨탑’) 사진 제공 | 휴머니스트


손꼽히는 건축사학자인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가 통찰하는 계단은 이렇듯 시대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건축을 통해 집약적으로 저장된 보물 창고다. 한국의 대표적인 다작 건축글쟁이인 그의 신작 <계단, 문명을 오르다>(휴머니스트)는 독특한 미시 서양문명사를 엮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다. 그는 계단 하나만 추적해도 서양의 모든 문명을 읽어낼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계단이 원래 한 문명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성이 농축된 부재(部材)’라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와 바벨탑에서부터 이집트의 피라미드, 이란 페르세폴리스, 베니스의 팔라초, 독일 아우구스투스부르크 왕궁, 로마의 스페인 계단, 브뤼셀 대법원 계단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화유적을 망라하며 계단의 문명사를 현장감 있고 감흥 깊게 펼쳐놓는다.

그는 인류 최초의 계단은 발자국이었다고 여긴다. 계단을 물질적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공적 도구가 아니라 자연 지형에 순응해서 맞춘 노력의 산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지 오르내리기의 수단 같은 기능주의적 인식은 길게 잡아야 15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전 2500년 동안 인류가 계단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다양한 인문사회학적 의미가 넘쳐나던 곳이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계단은 권력의 속성이 강하다.

한편 중세시대 건물 외부에 설치된 나선형 계단은 집권층의 권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작용했다(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팔라초 콘타리니에 있는 보볼로 계단). 사진 제공 | 휴머니스트


기독교는 야곱의 사다리 개념을 은유적으로 해석해 계단을 상징화하고, 르네상스 때에는 작가주의가 등장했다. 계몽주의는 계단의 공공성 담론을 창안했다. 로마의 유명한 스페인 광장을 설계한 알레산드로 스페키는 도심에 노천 계단을 이용한 시민공원 개념을 처음 도입한 도시건축가로 꼽힌다.

저자는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경우 두 가지 면에서 20세기 계단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나선형 계단을 조형적으로 활용해 조각 요소처럼 만든 것과 ‘산책로’라는 이름의 경사로를 중요한 건축 부재로 정착시킨 것을 든다.

지은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계단은 바로크시대의 것들이다. 바로크는 인간의 내적 열망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문명이자 계단을 가장 풍부하고 다양하게 사용한 문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계단의 다원성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계단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한 건축가로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80)를 꼽는다. 계단이 심미적인 요소이면서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위험한 장소라는 양면성, 이동 통로로서의 기능성과 중심공간으로서의 상징성, 사용자의 형태와 채광, 복합형식 등 팔라디오가 파악한 계단의 속성은 다양했다.

20세기 들어 고층건물의 등장과 더불어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발명되면서 오르기 힘든 계단은 결정타를 맞고 쇠퇴했다. 저자는 계단을 내주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얻은 것은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기계-물질문명의 폐해로 퇴색한, 계단에 저축되어 왔던 인문사회학적 의미는 결단코 복원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 같은 포괄적인 작업이 우리나라는 물론 사실상 세계 최초의 시도라고 자부한다. 1권 1만6000원, 2권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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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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